美麗的 詩 ·人

늙은 갈대의 독백 / 백석

yellowday 2016. 4. 16. 09:56

    





늙은 갈대의 독백 / 백석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는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ㅡ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갈거이 : 옆으로 기어가는 게. 정주에서는 가을에 나오는 게를 말하며 봄에는 '칠게'라고 한다.

                둘다 바다 게로 갈게는 등껍질이 아주 매끈매끈한 게로 칠게 보다는 크다.
    갈부던: 갈잎으로 엮어 만든 장신구, 갈잎 세 개로 서로 엮어 가운데는 빈 공간으로 된 두툼한 갈잎 덩어리.

                또는 그렇게 복잡하고 얼기설기한 정경.
    입닢 :   대롱이처럼 구멍이 있는 줄기닢.
    태공망 : 중국 주 나라의 재상인 태공망이 낚시질을 즐겼다는 데서 '낚시질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매딥매딥 : 마디마디.
    날여간 : 내려간.
    나린 : 내린.
    벼름질 : 무디어진 쇠붙이 연장을 불에 달구에 두들겨 날카롭게 하는 행위.
                 주로 낫과 같은 날카로운 연장을 만드는 데 벼름질이 많이 쓰임.
    산글 : 산골

    삿자리 : 갈대를 엮어서 만든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