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서정주님의 시 모음

yellowday 2016. 4. 1. 19:12

서정주
호는 미당(未堂)

1915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에서 출생
1929년 중앙 고보 입학
1931년 고창 고보에 편입학, 자퇴
1936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시 <벽>이 당선


           시 전문 동인지 『시인부락』 창간

1946년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 결성, 시분과 위원장직을 맡음
1950년 종군 위문단 결성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 역임
1972년 한국 문인 협회 부이사장


           한국 현대 시인 협회 회장 역임

1977년 한국 문인 협회 이사장
2000년 사망



시집 : 『화사집』(1941), 『귀촉도』(1948), 『흑산호』(1953), 『신라초』(1961), 『동천』 (1969),

『국화 옆에서』(1975), 『질마재 신화』(1975), 『노래』(1984), 『이런 나라를 아시나요』(1987),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 살구가 곡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숫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친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오는 어는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화사(花蛇)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내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 석유 먹은 듯 ......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에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동천(冬天)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귀촉도(歸蜀道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지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국화 옆에서
서정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