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0.06 21:27
상하이는 거대한 미로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얽힌 16개의 지하철 노선도가 미로 찾기의 지원군이다. 화려한 스카이라인 뒤에 숨은 골목 탐방, 400년 전의 정원산책, 1000년 된 수향마을의 노을 감상 등이 모두 가능하다. 그렇게 거리마다, 골목마다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고 오래된 도시의 향기가 피어난다. 날로 새로워지는 중국의 심장 속으로 떠나보자.
글·사진 우지경(여행작가)
*티웨이항공은 대구-상하이를 주 3회 운항하고 있습니다.
▲ 예원 남문 앞 구곡교는 늘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400년 전의 정원 산책, 예원
비 걱정은 고이 접어도 될 만큼 햇살이 좋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기 전에 서둘러 예원으로 향한다. 400여 년 전 상하이로 시간을 거스르는 산책길이다. 고층 건물들 사이에 신기루처럼 남아 있는 예원은 명나라 관료 반윤단(潘允端)이 부모를 위해 지은 전통 정원이다. 1599년에 착공해 18년간 공을 들여 지었다. 안타깝게도 양친은 예원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반윤단은 담벼락에 용을 새겼다는 이유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풍문이 전해온다. 그 후 예원은 아편전쟁 통에 유물을 약탈당하고, 태평천국군에 점거당하는 등 모진 풍파를 겪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상하이 여행자라면 누구나 찾는 명소가 됐다.
▲ 잉어가 뛰노는 예원의 연못가
예원에 발을 들이려면 옛 거리 '예원상장'을 지나 굽이굽이 아홉 번 휘어진 '구곡교(九曲橋)'를 건너야 한다. 귀신도 못 지나간다는 다리다. '에이, 귀신이 이까짓 다리 하나쯤이야'라고 의심했다가 설명을 듣고는 이마를 탁 쳤다. 중국 귀신은 모두 두 팔을 뻗고 오직 앞으로만 콩콩 뛰어다니는 강시 아니던가. 상하이 지하철만큼이나 인파가 몰려 사람도 이 다리를 통과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어캣처럼 목을 쭉 빼도 눈앞은 새까만 머리 반, 풍경 반이다. 순간, 이러다 예원도 줄서서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해온다.
▲ 좌-선이 고운 도자기 모양의 문, 우-예원의 연못가 정자 유상정에 앉아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
40여 개 정자와 연못, 누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원은 예상보다 널찍하다. 물가의 아담한 정자는 여기서 쉬어 가라 말을 걸고, 연못의 잉어는 폴짝 뛰어올라 온몸으로 환영 인사를 한다. 미로 같은 정원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정점은 점입가경이라는 이름의 회랑을 지날 때다. '가면 갈수록 경치가 아름다워진다'는 고사성어의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란다. 점입가경 옆으로 양산당과 대가산의 풍경이 펼쳐진다. 양산당은 예원에서 고아한 자태를 뽐내는 누각이다. 예원을 나서기 전 담벼락의 용을 찾아 발가락 수를 세어본다. 어디선가 반윤단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전하, 용의 발톱은 5개이나 신의 정원에 있는 짐승은 발톱이 3개밖에 없사옵니다. 용이 아니라 한낱 이무기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황제 앞에서 이 말 한마디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달변가였으리라.
서울의 명동 같은 번화가, 난징둥루
난징둥루(南京東路)도 예원만큼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서울의 명동을 확대한 듯한 번화가다. 거리 양옆으로 조계 시대의 중후한 건물과 최신식 쇼핑몰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일부 구간은 1999년부터 보행자 거리로 지정돼 맘껏 활보할 수 있다.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쉬어 가기도 좋다. 다리가 아플 땐 미니 관광열차가 여행자들의 발이 되어준다.
트램을 닮은 관광열차를 타고 난징둥루의 인파 속을 달리는 기분도 색다르다. 난징둥루 산책 중 놓치지 말아야 할 스폿은 ‘I♡SH' 간판 앞. 상하이 여행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상하이의 중심가 난징둥루 주변에도 명소들이 포진해 있다. 인민광장에서 난징둥루를 거쳐 항푸 강 연안 와이탄과 강 건너 푸둥까지 쭉
돌아보면 효율적이다.
*추천 코스 : 인민광장→난징둥루→와이탄→푸둥, 또는 푸둥→와이탄→난징둥루→인민광장
인민광장 : 상하이의 센트럴파크라 불리는 공원. 난징둥루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지하철 인민광장 역에 내려 공원을 둘러본 후 난징둥루까지 산책을 하기도 좋다. 광장 북쪽에 시청이, 남쪽에 상하이 박물관이 있다.
와이탄 : 난징둥루에서 황푸 강 강변으로 가면 만나게 되는 상하이 속 유럽, 와이탄. 오래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참패한 청나라는 난징조약에 따라 상하이를 비롯한 5개 항구를 개항해야 했다. 이에 상하이의 상업권을 거머쥔 영국인들이 황푸 강의 서쪽에 상관과 주거지를 구축한 것이 와이탄의 시초다. 지금도 1.5km 거리에 ‘건축박람회’라고 불릴 만큼 각기 다른 모양의 아르데코풍 건물 24채가 늘어서 있다. 평균 150세가 넘은 초고령 건물들이지만 안에는 인기 많은 레스토랑이나 바가 그득하다. 난징둥루에서 지하철역으로 한 코스라 찾아가기도 쉽다.
푸둥 : 영화 <미션 임파서블3> 속 주인공이 고공낙하하던 아찔한 마천루가 있는 곳. 동방명주타워, 상하이 월드파이낸셜센터 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빌딩들이 휘황찬란하다. 맑은 날 동방명주타워의 전망대(263m)에 오르면 상하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바닥까지 유리로 돼 있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단 푸둥의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담으려면 강 건너 와이탄으로 가야 한다.
노을 지는 수향마을 산책, 치바오 라오제
상하이의 10년을 보려면 푸둥에 가고, 상하이의 100년을 보려면 와이탄에 가고, 상하이의 1000년을 보려면 치바오에 가라는 말이 있다. 치바오는 배가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던 송나라 시절에 강을 끼고 형성된 수향(水鄕)이다.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도심 한가운데에 운하를 에워싼 마을과 거리가 남아 있다. 규모는 작아도 지하철로
훌쩍 다녀올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다. 물 위엔 아치형 다리가 여럿 놓여 있다.
수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선 고풍스러운 집들 앞엔 나룻배가 떠 있다. 풍경에 취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다 보면 어느새 어깨 위로 노을이 내려앉는다. 치바오의 아름다움은 하늘이 점점 짙푸르게 변해갈 무렵 빛을 발한다. 선이 고운 지붕마다 불을 밝힌다. 하늘과 물이 데칼코마니처럼 같은 풍경으로 물들어간다.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일렁
인다.
둥타이루에서 신천지까지 골목 산책
부슬부슬 엷은 비가 내리는 거리를 걷는다.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상하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 것이다. 상하이 사람들은 비가 오면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탄다. 바닥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자전거 바퀴 소리가 경쾌하다. 빗소리에 발맞춰 걷다 보니 어느새 둥타이루구완제다. 이곳은 작은 골목 안에 60여 개의 골동품 가게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거리. 가게 뒤에 가게가 있는 구조가 흥미롭다. 마음에 드는 물건의 가격을 물어보자 할머니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른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큰 소리로 '타이구이러(太贵了=너무 비싸요!)'라고 외쳐본다. 그러자 계산기를 들이밀며 얼마를 원하는지 숫자를 눌러보란다. 끝을 알 수 없는 '밀당' 같은 흥정도 골동품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다.
▲ (시계방향으로)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담아두기 좋은 색색의 상자들, 구석구석 운치 있는 신천지의 골목길, 룽탕 비 내리는 둥타이루구완제
둥타이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쓰난맨션과 신천지가 있다. 쓰난맨션은 1920년대 고급 빌라촌이었으나 2010년 레스토랑·카페 거리로 탈바꿈했다. 아담하고 호젓한 맛이 있다. 저녁이 내려앉기 전 신천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천지는 빗속에서 한층 짙은 색감을 뿜어낸다. 레스토랑에서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온다. 얼핏 보면 유럽의 어느 거리 같지만 알고 보면 '스쿠먼'과 '룽탕'이 빚어내는 풍경이다. 신천지 어디에나 있는 스쿠먼은 중국과 서양의 건축을 결합시킨 상하이 특유의 건축 양식. 19세기 말 상하이에 인구가 몰려들면서 이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스쿠먼이 탄생했다. 스쿠먼과 스쿠먼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긴 골목이 룽탕이다.
스쿠먼에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킨 후 1997년 홍콩 자본에 의해 조성된 노천 레스토랑과 쇼핑의 거리가 지금의 신천지다. 골목골목 우중 산책의 마무리는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해도 좋다. 신천지의 중심부에 자리한 파울라너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독일인들도 즐겨 찾는 독일식 비어하우스다. 비 내리는 신천지를 바라보며 마시는 맥주 한잔. 짧은 여행의 마지막 장면으로 이보다 좋은 결말이 또 있을까.
▲ 상하이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 중 하나인 샤오룽바오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리다. 상하이의 봄이 서울·대구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야경을 즐기려면 겉옷과 스카프는 필수. 전압은 220V. 지하철 기본요금은 3위안(약 550원). 예원 앞은 길거리 음식 천국.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집은 청나라 시절부터 샤오룽바오를 만들어온 난샹 샤오룽바오(南翔 小籠包)다. 테이크아웃이건 식당에서 먹고 가건 줄이 길다 보니 참고 기다리는 자만이 샤오룽바오를 맛볼 수 있다.
입안에서 톡 터지는 육수 맛이 일품인 샤오룽바오,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다진 돼지고기와 함께 육수를 만두소로 넣는다. 육수를 식힌 후 젤라틴으로 굳힌 다음 피로 싸서 넣는 것이 비법. 그대로 대나무 찜통에 쪄내면 육수가 녹는다는 원리다. 제대로 맛보려면 숟가락에 샤오룽바오를 올려놓고 만두피를 살짝 터뜨려 육수를 호로록 마신 후 나머지를 먹는 것이 좋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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