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7.18 14:29
오전 햇빛 속에서 다시 빛나는 ‘백제의 미소’
달팽이 집처럼 얹혀 있던 보호각이 없어진 암벽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오르내리고 향기로운 바람도 서성이는 듯했다.
달팽이 집처럼 얹혀 있던 보호각이 없어진 암벽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오르내리고 향기로운 바람도 서성이는 듯했다.
2007년 12월 이후 무겁고 답답한 보호각과 뜨거운 백열등을 걷어낸 암벽에 ‘백제의 미소’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거대 암벽 하단에 새겨진 마애불은 시간대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준다. 오전 중, 그늘이 있던 암벽에 햇빛이 내리면 마애불의 세부 조각들은 섬세하게 깨어나기 시작한다. 눈은 더 반짝이고 미소는 더 환해진다. 마애불에는 백제가 멸망하기 전 태평성대를 누렸던 600년경(7세기 초)의 백제인 모습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 암벽에서 약 1400년 전의 백제인들을 만나고 있다.
3존불은 법화경의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의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추정
이곳 3존불은 석가불인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이 있다. 좌협시는 미륵보살이 확실하나 두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서 있는 우협시는 관음보살이라는 의견과 제화갈라보살이라는 의견이 있다. 우협시를 제화갈라보살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현재불인 석가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석가불 이전에 성불한 부처들은 과거불, 석가불 이후의 부처들은 미래불이라고 한다. 이곳의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인 연등불이 보살이었을 때, 미륵보살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보살일 때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좌우 보살은 각각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둘 다 부처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 3존불은 현재불인 중앙의 석가불을 포함하여 왼쪽에 미래불, 오른쪽에 과거불 등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대승불교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의 제1장 서품(서문)에 석가불과 관련된 연등불, 미륵불 이야기가 있다.
3존불은 법화경의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의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추정
이곳 3존불은 석가불인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이 있다. 좌협시는 미륵보살이 확실하나 두 손에 보주(寶珠)를 들고 서 있는 우협시는 관음보살이라는 의견과 제화갈라보살이라는 의견이 있다. 우협시를 제화갈라보살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이야깃거리가 많아진다.
현재불인 석가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석가불 이전에 성불한 부처들은 과거불, 석가불 이후의 부처들은 미래불이라고 한다. 이곳의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인 연등불이 보살이었을 때, 미륵보살은 미래불인 미륵불이 보살일 때의 모습을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좌우 보살은 각각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둘 다 부처인 셈이다. 그래서 이곳 3존불은 현재불인 중앙의 석가불을 포함하여 왼쪽에 미래불, 오른쪽에 과거불 등 세 부처를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대승불교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의 제1장 서품(서문)에 석가불과 관련된 연등불, 미륵불 이야기가 있다.
중앙에 서 있는 석가불은 크기, 돋을새김 등에서 중심이 되고
중앙에 서 있는 석가불은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었다. 3존불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주변의 광배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 석가불의 위대한 권능은 더 돋보인다.
또, 햇빛이 둥근 얼굴에 내려 앉으면 터질 듯 살이 오른 두 뺨, 살구씨 모양의 눈, 입에서는 자비로운 미소가 흐른다. 그리고 두 손 모양 역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표현하고 있어서 자비로움이 넘친다.
그래서 석가불의 모습에서는 위대한 권능과 함께 자비심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우협시는 석가불이 전생에서 만난 연등불을 보살 모습으로 새긴 제화갈라보살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는 출가 전 여덟 명의 왕자를 아들로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성불하여 일월등명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에 왕자들 모두 출가하여 부처가 되었다. 그 중에서 막내 왕자가 연등불(燃燈佛)이 되었다.
부처가 되기 전 윤회하던 전생에서 석가불은 상인, 왕, 브라만 승려 등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선혜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수행하던 전생에서의 어느 날, 연등불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일곱 송이 연꽃을 공양하고 진흙 길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에 연등불이 선혜보살에게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해 주었다. 이렇게 닿은 연등불과 석가불의 인연 이야기는 여러 불교 국가에서 많은 불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곳 서산에서는 마애불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아이처럼 밝게 웃는 미륵보살은 미래의 희망을 주는 듯하고
왼쪽의 미륵보살은 연꽃 대좌 위에서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半跏)의 자세로 사유(思惟)하고 있다.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의 여덟 왕자에게 스승인 묘광보살이 있었다. 묘광보살의 많은 제자들 중에 구명(求名)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구명은 경전을 독송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잘 잊어버렸다. 이렇게 수행이 더디었던 구명이 미륵보살이었다. 미륵보살은 먼저 부처가 된 석가불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지금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이 미륵보살상 역시 소년 같은 체형에 어린 아이 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보 중 하나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에 잠겨 고뇌하고 또, 빼빼 마른 육체가 가늘고 잘 빠진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보살상은 통통하고 중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듯한 밝은 표정으로 사유를 하고 있다.
백제와 중국간 해상 교역의 무사안전 소원을 들어 주었을 마애불
그 당시 고구려에 의해 육로가 차단된 백제는 이곳의 서해안 바닷길을 통해서 중국과 문물교류를 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 산동반도와 가까운 태안과 당진 등의 항구를 통해 사신, 상인, 승려들이 나가고 들어오면서 다양한 문화와 문물이 교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해 바다 뱃길과 교역로 상의 무사안전을 위해서 태안에는 마애3존불(보물 제432호), 그리고 그 길목인 이곳 서산 용현리에 마애3존불(국보 제84호), 예산 화전리에 사면석불(보물 제794호)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게 표현한 장인의 공력에 감탄하면서 길을 내려오는데 계단 길 옆 돌담 바로 위에서 웃는 얼굴로 마애불이 배웅해 준다.
▶소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산 2-10
(도로명 주소: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아름다운 마애불을 볼 수 있는 햇빛 좋은 시간대: 오전 11시-정오
▶주변 볼거리
- 보원사터: 백제시대에 창건되었고 나말여초에 융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넓은 터로만 남아 있다. 나말여초의 고승인 법인국사(900-975)의 부도(보물 제105호)와 비(보물 제 106호), 석조(보물 제102호), 5층 석탑(보물 제104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가 있다. 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에서 약 1.5km 거리에 있다.
- 개심사: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아늑하고 운치가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43호), 심검당 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특히, 비틀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만든 심검당, 종각, 무량수각의 기둥이 눈길을 끈다.
- 해미읍성: 조선시대에 왜구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이다. 특히, 조선 말 박해 받던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중앙에 서 있는 석가불은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되었다. 3존불의 중심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주변의 광배와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서 석가불의 위대한 권능은 더 돋보인다.
또, 햇빛이 둥근 얼굴에 내려 앉으면 터질 듯 살이 오른 두 뺨, 살구씨 모양의 눈, 입에서는 자비로운 미소가 흐른다. 그리고 두 손 모양 역시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시무외여원인을 표현하고 있어서 자비로움이 넘친다.
그래서 석가불의 모습에서는 위대한 권능과 함께 자비심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우협시는 석가불이 전생에서 만난 연등불을 보살 모습으로 새긴 제화갈라보살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는 출가 전 여덟 명의 왕자를 아들로 두고 있었다. 아버지가 성불하여 일월등명부처가 되었다는 소식에 왕자들 모두 출가하여 부처가 되었다. 그 중에서 막내 왕자가 연등불(燃燈佛)이 되었다.
부처가 되기 전 윤회하던 전생에서 석가불은 상인, 왕, 브라만 승려 등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선혜보살이라는 이름으로 열심히 수행하던 전생에서의 어느 날, 연등불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일곱 송이 연꽃을 공양하고 진흙 길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이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이에 연등불이 선혜보살에게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해 주었다. 이렇게 닿은 연등불과 석가불의 인연 이야기는 여러 불교 국가에서 많은 불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였는데 이곳 서산에서는 마애불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아이처럼 밝게 웃는 미륵보살은 미래의 희망을 주는 듯하고
왼쪽의 미륵보살은 연꽃 대좌 위에서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에 올린 반가(半跏)의 자세로 사유(思惟)하고 있다. 법화경에 의하면 일월등명부처의 여덟 왕자에게 스승인 묘광보살이 있었다. 묘광보살의 많은 제자들 중에 구명(求名)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구명은 경전을 독송해도 이해하지 못하고 잘 잊어버렸다. 이렇게 수행이 더디었던 구명이 미륵보살이었다. 미륵보살은 먼저 부처가 된 석가불로부터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지금도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
이 미륵보살상 역시 소년 같은 체형에 어린 아이 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국보 중 하나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명상에 잠겨 고뇌하고 또, 빼빼 마른 육체가 가늘고 잘 빠진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보살상은 통통하고 중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듯한 밝은 표정으로 사유를 하고 있다.
백제와 중국간 해상 교역의 무사안전 소원을 들어 주었을 마애불
그 당시 고구려에 의해 육로가 차단된 백제는 이곳의 서해안 바닷길을 통해서 중국과 문물교류를 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 산동반도와 가까운 태안과 당진 등의 항구를 통해 사신, 상인, 승려들이 나가고 들어오면서 다양한 문화와 문물이 교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해 바다 뱃길과 교역로 상의 무사안전을 위해서 태안에는 마애3존불(보물 제432호), 그리고 그 길목인 이곳 서산 용현리에 마애3존불(국보 제84호), 예산 화전리에 사면석불(보물 제794호)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단한 화강암 바위에 살아 숨쉬는 듯 생생하게 표현한 장인의 공력에 감탄하면서 길을 내려오는데 계단 길 옆 돌담 바로 위에서 웃는 얼굴로 마애불이 배웅해 준다.
▶소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산 2-10
(도로명 주소: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아름다운 마애불을 볼 수 있는 햇빛 좋은 시간대: 오전 11시-정오
▶주변 볼거리
- 보원사터: 백제시대에 창건되었고 나말여초에 융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넓은 터로만 남아 있다. 나말여초의 고승인 법인국사(900-975)의 부도(보물 제105호)와 비(보물 제 106호), 석조(보물 제102호), 5층 석탑(보물 제104호), 당간지주(보물 제103호)가 있다. 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에서 약 1.5km 거리에 있다.
- 개심사: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는데 아늑하고 운치가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143호), 심검당 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특히, 비틀어진 나무를 그대로 살려서 만든 심검당, 종각, 무량수각의 기둥이 눈길을 끈다.
- 해미읍성: 조선시대에 왜구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이다. 특히, 조선 말 박해 받던 많은 카톨릭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2014년 8월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하였다.
- 당진 영탑사 마애불: 영탑사 경내의 유리보전이라는 법당 안에 있다. 토속적인 친근감을 주는 마애불이다.
-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보물 제794호): 돌기둥의 동서남북 사면에 각각 부처를 새겨 놓았다. 얼굴 등에 훼손이 있으나 조각미가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방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주변 볼거리와 연계하면 좋을 마애불 여행 1일 추천 프로그램
A코스
-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오전 11시-정오)→보원사터(하루 중)→개심사(하루 중)→해미읍성(하루 중)
B코스
-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오전 11시-정오)→보원사터(하루 중)→당진 영탑사 마애불(법당 내, 하루중)→면천읍성(하루 중)→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보호각 내, 하루 중)
-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보물 제794호): 돌기둥의 동서남북 사면에 각각 부처를 새겨 놓았다. 얼굴 등에 훼손이 있으나 조각미가 뛰어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방불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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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오전 11시-정오)→보원사터(하루 중)→개심사(하루 중)→해미읍성(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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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용현리 마애3존불(오전 11시-정오)→보원사터(하루 중)→당진 영탑사 마애불(법당 내, 하루중)→면천읍성(하루 중)→예산 화전리 사면석불(보호각 내, 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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