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에서 살며 느낀 북유럽의 가치
- 스웨덴 스코네 지역의 일반적인 농가 주택 및 창고. 스코네랭가라고도 한다. /Conny Fridh/imagebank.sweden.se
디자인 박람회에서 평소 좋아하던 유명 디자이너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 그는 오히려 어떻게 자신을 알아보는지 놀라워하고 신기해했다. 그게 북유럽이었다. 남을 쉽게 동경하는 마음이라면 스웨덴의 재벌 가문이나 왕실 가족을 쳐다보며 스스로를 비교하겠지만, 그들도 함께 사는 사회의 일원일 뿐 나와 견주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국왕의 모습, 자전거를 타고 일하러 가는 재벌이나 국회의원을 보는 건 이곳에선 놀라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큰딸아이와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을 면담하던 날이었다. 나의 역할은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증인'이었다.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무엇을 가장 하고 싶은지" "무엇이 어려운지" "가장 궁금한 건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내가 끼어들어 대답하려 하자 오히려 "아이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그냥 듣자고만 했다. 여기선 아무도 누가 제일 성적이 좋고, 나쁜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경쟁하는 시상식도 없었다. 아이 성적이 몇 등인지 알고 싶어 하는 내게, 그 궁금증이 결국 우리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비로소 우리는 아이 능력과 꿈, 행복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경쟁이 없는 스웨덴의 학교가 낯설어 담임선생님께 이유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온다. "스웨덴은 뛰어난 아이 한 사람을 찾기보다 대다수보다 뒤처지는 아이가 없도록 골고루 이끌어야 한다는 평등 교육을 실천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사람 때문에 모두가 힘들어지는 사회를 원하지 않는다."
- 스웨덴 스톡홀름의 18세기까지의 옛날 항구. 현재는 관광용 여객선과 각 도서를 잇는 정기 여객선의 항구로 쓰이고, 수상 버스와 소형보트가 정박해 있다. /Ola Ericson/imagebank.sweden.se
나는 늘 익숙해 있던 '재확인'이란 습관이 결국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경험에서 온 결과라는 것을 배웠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약속의 확인은 매너이자 나를 지켜주는 분명함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매번 다시 확인하는 내게 북유럽 친구들은 "약속을 했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느냐"고 의아해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짓 없는 답을 전하는 북유럽 사회에 와서 약속과 배려의 의미를 처음부터 새로 배운 것이다. 구두 약속이라도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나라. 북유럽의 가치 중 하나인 배려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라는 바탕이 없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문화적 가치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스케이트장에서 정해진 요금표를 보고 그만큼의 돈을 책상에 올려놓고 스케이트를 가져갔고, 박물관 출입구에서 입장권을 재확인하는 이도 없었다.
- 스웨덴 가정의 단란한 식사 모습. /Melker Dahlstrand/imagebank.sweden.se
지금은 살기 좋은 곳으로 동경받는 북유럽 5개국은 역사적으로 아주 외지고 척박한 그야말로 가난한 땅이었다. 어려운 시절부터 생활의 절제와 절약, 그리고 사람이 적은 곳에서 인력을 소중히 생각하는 평등과 존중이 항상 북유럽을 지켜주고 있다.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 북유럽 전통은 심플하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원한다. 긴 겨울을 달래주는 아름다운 조명이 발달하고, 캄캄한 겨울 동안 밝은 자연의 느낌을 그 안에서 소중히 연출하는 공간이 우리가 열광하는 북유럽 인테어이다. '북유럽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트렌드로 유행이 될 만큼 세계는 북유럽 디자인에 열광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그들 삶의 흔적이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색상은 길고 어두운 겨우내 밝은 하늘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바람이다.
꿈 같은 햇볕과 따스함이 주어지는 여름에도 그들은 들떠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사함을 나누며, 삶의 행복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예쁜 디자인, 사회복지의 안락한 생활, 서로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사회 분위기를 동경하기 이전에 그들의 모습을 이끌어 준 북유럽 사회의 마음을 읽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