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4.30 03:00
카우나스에 추적추적 초가을 비가 내렸다. 발트해 연안 리투아니아의 제2 도시다. 작년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 따라간 취재 길에 중심가 동쪽 언덕을 헤맸다. 거목 우거지고 고풍스러운 주택가 깊숙이 아담한 이층집이 숨어 있다. 울타리도 없이 낮은 쪽문이 달렸다. 양쪽 기둥에 리투아니아어와 일본어로 새겨놓았다. '희망의 문, 생명의 비자.' 1930년대 임시 수도 카우나스에 일본이 낸 옛 영사관이다.
▶지금은 대학 아시아연구소와 함께 '스기하라의 집'이 됐다. 2차대전 초기 1939년 여기 살며 일했던 일본 영사대리 스기하라 지우네를 기린다. 리투아니아엔 폴란드 유대인 12만명이 나치를 피해 와 있었다. 리투아니아 유대인도 20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곧 닥칠 나치로부터 탈출해야 했지만 비자 내주는 공관이 거의 없었다.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차지하고 외국 공관을 쫓아내면서 사정이 더 급박했다. 일본 영사관에도 유대인이 몰려왔다.
▶지금은 대학 아시아연구소와 함께 '스기하라의 집'이 됐다. 2차대전 초기 1939년 여기 살며 일했던 일본 영사대리 스기하라 지우네를 기린다. 리투아니아엔 폴란드 유대인 12만명이 나치를 피해 와 있었다. 리투아니아 유대인도 20만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곧 닥칠 나치로부터 탈출해야 했지만 비자 내주는 공관이 거의 없었다. 소련이 리투아니아를 차지하고 외국 공관을 쫓아내면서 사정이 더 급박했다. 일본 영사관에도 유대인이 몰려왔다.
▶3유로를 내고 '스기하라의 집'을 구경했다. 방 둘에 집무실을 재현했다. 15분 영상도 봤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루가항(港) 가는 배 풍경으로 시작해 증언들을 담았다. 일본 여자 내레이터가 감상적인 목소리로 '출애굽'에 비유했다. 스기하라는 전후(戰後) 외무성 압력으로 사실상 면직됐다. '카우나스의 불복종' 탓이다. 그는 러시아어 통역과 무역업을 하다 여든다섯에 떠났다. 일본 외무성은 2000년에야 그의 공적을 인정했다.
▶그 이름을 뜻밖에 아베 총리에게서 듣는다. 1월 예루살렘에 이어 워싱턴에서도 "스기하라의 용기를 배우고 싶다. 자랑스럽다"고 했다. 두 번 다 홀로코스트 추모관에서다. 독일 지도자들은 몇십 년 거듭해 나치 만행을 사죄하면서도 유대인을 구해낸 독일인 쉰들러 언급은 삼간다. 진심이 흐려질까 봐 그럴 것이다. 아베 총리는 여전히 역사를 반성할 기미가 한 점도 없다. 스기하라의 용기를 배운 게 그것인가. 스기하라를 얘기하려면 침략의 과거사를 참회하고 피해자의 용서를 구한 뒤 할 일이다. w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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