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국에 다녀온 사신들이 기록한 '연행록(燕行錄)'은 현재 약 600종이 남아 있다. 조선 사신들은 평안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요동과 산해관을 거쳐 북경(北京)에 이르는 2000㎞ 길을 걸었다. 고려 말까지 포함하면, 우리 사신이 중국에 다녀온 횟수는 13~14세기 119회, 15세기 698회, 16세기 362회, 17세기 278회, 18세기 172회, 19세기 168회로 모두 1797회에 이른다. 정사·부사·서장관을 비롯해 군관과 역관, 하인과 말몰이꾼까지 300~6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이었다. 일행 규모를 1회 평균 500명으로 계산할 때 700년간 거의 90만명이 왕복 5~6개월에 달하는 힘든 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저자(동국대 교수)는 조선 사신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역사의 풍경을 복원한다. 사행(使行)길은 험난한 여정이었다. 지금은 버스와 택시, 배와 기차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당시 사신들은 더위와 추위를 무릅쓰고 포장도로도 없는 험난한 산길을 넘고 발걸음을 가로막는 숱한 하천(河川)을 건너야 했다.
요동성으로 가는 길목인 연산관을 나서면 깎아지른 암벽과 숲이 얽혀 있는 험준한 지형이 나타난다. 사신 일행은 산허리에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개미처럼 한 줄로 늘어서 오르내려야 했다. 정조 22년(1798년)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서유문은 봄이 오는 때인 음력 3월이었는데도 얼어붙은 길을 가느라 고생한 기록을 남겼다. "눈바람이 크게 일고 또 비가 내려 산골짜기의 얼음 두께가 일척(一尺·약 30㎝) 이상이다. 수레는 구르고 말은 지쳐 빠져나오기가 매우 어렵다."
- 중국 요동과 북경 지역의 군사 요충지를 나타낸 18세기 초 ‘요계관방지도’. 의주에서 북경에 이르는 청나라 때 사행(使行)길을 지도 위에 표시했다. /한길사 제공
명·청 교체기에는 육로가 막혀 바닷길을 이용했다. 병자호란 직전인 인조 7년(1629년) 명으로 가는 사신 일행이 태풍을 만나 물에 빠져 죽는 등 해로(海路)에서 약 600명이 사망했다. 육로에서도 낯선 음식과 물을 갈아 마시는 험한 여행 탓에 풍토병에 걸려 죽은 사신이 적지 않았다.
사대(事大)를 단지 굴욕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보면 한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저자도 "연행록을 읽다 보면 서글퍼지면서 울분이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고 썼다. 뇌물을 요구하고 텃세를 부리는 중국 관리들의 횡포에 사신들은 피곤한 몸을 편히 누이기 어려웠다. 정조 때 재상 채제공은 자신이 쓴 연행록에 '원한을 삼키고 원통을 참는다'는 뜻으로 '함인록(含忍錄)'이란 제목을 달았다. 힘없는 나라가 살아갈 길을 모색하려고 한 사신들의 고통과 분투를 읽으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저자의 '신(新) 연행록'은 과거 역사와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가상 인물인 서장관 '필(筆)'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을 일부 도입해 옛 역사를 알기 쉽게 들려준다.
조선 사신이 중국 관리와 '관시(관계)'를 맺고 외교 성과를 내려고 노력한 점 등은 현재 우리 외교에도 지혜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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