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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황희, 90세까지 현직에… 조선시대 최장수 기록은 118세 - 여든 살에 득남, 아흔까지 정승… 老益壯 많았다

yellowday 2014. 11. 15. 04:46

입력 : 2014.10.25 09:30

영의정 황희, 90세까지 현직에… 조선시대 최장수 기록은 118세
국왕 평균 수명은 46세로 짧아, 태조·영조 등 환갑 넘긴 왕 5명뿐


	노년의 풍경
 

노년의 풍경

김미영·이숙인·고연희 외 지음|글항아리
350쪽|2만5000원

늙는다는 건 자연의 현상일 뿐 부끄럽거나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영화 '은교'의 대사처럼 젊음이 노력으로 받은 상이 아니듯 늙음은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늙음을 뜻하는 한자 '노(老)'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노련(老鍊)' '노숙(老熟)' '노성(老成)'에서 '노'는 오랜 경험으로 무르익었다는 긍정적인 뜻이다. 반면 '노둔(老鈍)' '노후(老朽)' '노욕(老慾)'에는 낡고 고집스럽다는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 옛 사람들도 늙음의 두 측면에 주목했다. 역사·동양철학·한문학 등을 전공한 연구자 8명이 옛 자료를 통해 역사 속 노년(老年)의 모습을 재구성했다.

성호 이익 '노인의 열 가지 좌절'

83세까지 산 18세기 학자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은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라는 글에서 늙음의 비감(悲感)을 익살스럽게 적었다.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 '곡할 때는 눈물이 안 나고 웃을 때는 눈물이 흐른다' '흰 얼굴은 검어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진다'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해도 눈앞의 일은 잊어버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보면 분별할 수 있는데 눈을 크게 뜨고 가까이 보면 도리어 희미하다' '배고픈 생각은 자주 있으나 밥상을 대하면 먹지 못한다'….


	83세 조선 최장수 국왕 영조(왼쪽)는 보리밥을 나물과 비벼 먹거나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등 소식(小食)을 즐겼다. 84세 때 판중추부사 벼슬에서 물러난 허목은 “평생 입을 지키면 망언(妄言)이 없고, 몸을 지키면 망행(妄行)이 없으며, 마음을 지키면 망동(妄動)이 없다”고 했다. /글항아리 제공
83세 조선 최장수 국왕 영조(왼쪽)는 보리밥을 나물과 비벼 먹거나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등 소식(小食)을 즐겼다. 84세 때 판중추부사 벼슬에서 물러난 허목은 “평생 입을 지키면 망언(妄言)이 없고, 몸을 지키면 망행(妄行)이 없으며, 마음을 지키면 망동(妄動)이 없다”고 했다. /글항아리 제공

75세에 정승이 된 심수경(沈守慶·1516 ~1599)은 여든이 넘어도 장수무병(長壽無病)한 자신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75세 때 아들을 낳은 데 이어 81세 때 또 득남했다. 여러 사람이 축하하자 시를 써 화답했다. '75세 생남(生男)도 드문 일인데 어이하여 팔십에 또 아들을 낳았나. 팔십 생남은 재앙인가 두려우니 축하는 당치 않소 웃기나 하소.'

노익장(老益壯) 관료도 적지 않았다. 심수경은 자신을 포함해 당대 재상 반열에 오른 이들을 자랑스럽게 기록했다. '송순은 지중추로 92세, 오겸은 찬성으로 89세, 홍섬은 영의정으로 82세, 원혼은 판중추로 93세, 임열은 지중추로 82세, 송찬은 우참찬으로 88세, 나는 영중추로 82세인데 모두 아직 병이 없이 건강하니 다행이다.' 황희(黃喜·1363~1452)는 69세 때 영의정에 올라 숨을 거둘 때까지 20년간 현직에 머물렀다. 김상헌(金尙憲·1570~1652)은 80세 때 좌의정에 제수됐다. 남인(南人)의 영수인 허목(許穆·1595~1682)은 84세 때 판중추부사 벼슬에서 물러났다.

최장수 118세, 환갑 넘긴 국왕은 5명


	평균 수명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간한 '경북유학인물지'는 1000여년간 경북·대구 지역 출신 유학자 1만8900명을 수록했다. 이 중 생몰 연도가 명확한 이는 9930명으로 평균 수명은 64.7세였다. 옛날에는 환갑을 넘긴 이가 드물었다는 통념과는 달리 60세 이상이 6760명으로 전체의 68%에 달했다. 장수한 이들도 의외로 많다. 70~70세가 2675명, 80~89세가 1469명, 90~99세 75명, 100세 이상 2명이다.

최장수 인물은 118세까지 산 이약(李�·1572~1689)이다. 안동 출신인 그는 스무 살 때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50~60대 때 정묘·병자호란이라는 큰 전란을 다시 겪은 후에도 약 60년을 더 살았다.

조선 국왕의 평균 수명은 46세로 짧은 편이다. 문종(39세), 성종(38세), 연산군(31세), 효종(41세), 현종(34세), 순조(45세) 등 대부분 국왕이 30~40대에 사망했다. 당대 최고 의료진이 보필했어도 산해진미로 가득한 고(高)칼로리 수라상을 받는 한편 운동 부족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조선 519년간 재위한 27명 국왕 중 환갑을 넘긴 이는 5명뿐이다. 태조(74세), 정종(63세), 광해군(67세), 영조(83세), 고종(68세)이다. 54세까지 산 세종은 밥상에 고기가 없으면 식사하지 못할 정도로 육식 애호가였다. 그러면서 새벽 5시부터 밤늦게까지 업무에 몰두했다. 운동할 겨를이 없어 자연히 비만으로 이어졌고 당뇨와 관절통에 시달렸다. 반면 최장수 임금 영조는 무수리 출신 어머니와 함께 사가(私家)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즉위 이후에도 비단 이불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명주 이불을 썼다. 영조는 김치와 장(醬)만으로 밥을 먹는 등 소박한 식단을 즐겼다고 한다.

"노인 공경은 국가 이념"

국가를 다스리는 근본이념으로 유교를 기치로 내세웠던 조선은 노인 공경을 중시했다. 인조는 "노인을 공경하고 어진 이를 존경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라고 했다. 조선 법전인 '경국대전'과 '대전회통'에는 일정 나이에 이른 노인에게 벼슬을 주는 '노인직'을 두고 있다. 노인직은 양반뿐 아니라 상민·천민을 비롯해 여성에게도 해당됐다. '대전회통'에는 80세 이상인 자는 양인·천인을 막론하고 관직을 주고, 이미 관직이 있는 이에게는 1계(階)를 올려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노인을 늘 공경하기만 한 것은 아닌 듯하다. 이익은 "덕화(德化)는 국가에서 노인을 잘 기름으로부터 시작하는데 지금 풍속을 보니 가정에서는 자제(子弟)들이 부형(父兄)을 업신여기고 젊은이들이 노인을 능멸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책에는 옛 그림에 나타난 노인들의 모습, 중국과 일본의 노인 공경 풍속, 유가와 도가에서 바라보는 늙음 등에 대해서도 장(章)을 할애해 자세히 설명한다. '100세 시대'라는 지금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