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日지식인들 "김지하 詩를 읽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yellowday 2014. 10. 3. 09:54

입력 : 2014.10.03 03:09

[노마 히데키 교수, 韓·日 140명 추천서 묶은 '한국의 知를 읽다' 출간]

양국 함께 써낸 '한국 지성 탐구서'
"韓流 음악·영화 높이 평가하면서 정작 知 언급 못하는 것은 불균형
지적 교류·공감대, 강한 힘 낼 것"

"한국의 '지(知·지식이나 앎)'에 대한 책을 1~5권 선택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2000자 정도로 써주세요."

한국인이 한국인에게 이렇게 물었다면 덜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한 청탁자는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일본 국제교양대 교수. 그는 지난 1년3개월간 일본의 소설가·문예평론가·출판인·언어학자·영화감독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되도록 손에 넣기 쉬운 책을 선정해달라"는 정도 외에는 별다른 조건도 달지 않았다. 노마 교수는 2010년 '한글의 탄생-문자라는

기적'을 일본에서 출간해 2012년 외국인 최초로 한글학회가 주는 주시경학술상을 받은 지한파(知韓派) 지식인이다.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펴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일본 국제교양대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나도 처음 들어본 책들이 많았다. 한·일 대표적 지성들의 관심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펴낸 노마 히데키(野間秀樹) 일본 국제교양대 교수는 전화 인터뷰에서 “나도 처음 들어본 책들이 많았다. 한·일 대표적 지성들의 관심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다양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그는 2일 전화 인터뷰에서 "'한류(韓流)'로 통칭되는 한국의 영화·음악·드라마는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면서도

"반면 읽고 듣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대상으로서 한국의 '지'에 대해선 일본의 뛰어난 지식인조차 자신 있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국적을 가늠하기 힘들 만큼 유창한 한국어였다.

지인과 출판사를 통해 알음알음으로 작성한 대상자에게 1000통 가까이 편지와 이메일을 보내자 조금씩 답변이 들어왔다.

문예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 일본에서 100만부 넘게 팔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을

번역한 가메야마 이쿠오 전 도쿄외국어대 총장 등이 포함됐다.


	일본 지식인들이 꼽은 한국 관련 주요 서적들 정리 표

내친김에 그는 문학평론가 김병익·백낙청, 소설가 신경숙·성석제·김연수, 극작가 이강백, 건축가 승효상, 디자이너 이상봉 등 한국 지식인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본 지식인 94명, 한국 46명 등 140명의 답변을 묶어 펴낸 책 '한국의 지(知)를 읽다'(위즈덤하우스)가 다음 주 한국에서 출간된다. 한·일(韓·日)의 지성이 함께 쓴 '한국 지성(知性) 탐구서'다. 일본판으로는 지난 2월 먼저 소개됐다.

일본의 대표적 문예비평가 가라타니는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꼽았다. 그는 "이 책이 나에게 충격을 준 까닭은 일본의 특성을 서양이나 중국과의 차이점을 통해 이끌어내는 담론이 지배적이었던 시기에 그것을 한국과의 차이를 통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가메야마 전 총장은 김지하 시인의 시 '불귀(不歸)'를 추천하면서 "박정희 정권에 반기를 들고 두 번이나 사형 판결을 받은 김지하를 생각하면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한국에는 이토록 강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첫인상을 고백했다.

일본 지식인 94명이 추천한 한국 관련 도서는 264종이었다. 수필가 김소운이 일본어로 번역한 '조선 시집' '조선 동요선'(7회)과 김지하의 시·산문(6회), 윤동주·유안진(이상 5회)의 시, 김중혁(5회)·한강(4회)·황석영·신경숙(이상 3회)의 소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과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이상 4회) 등의 추천 빈도가 높았다. 노마 교수는 "윤동주·김지하·이어령 정도를 제외하면 겹치는 책이 별로 없을 정도로 추천 서적의 종류가 예상보다 훨씬 폭넓고 다양했다"고 말했다.

한국 지식인 46명도 137종을 추천했다. 시인 김수영의 시·산문 전집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이상 4회), 시인 이상(李箱) 문학 전집, 박경리의 '토지', 문학평론가 김현의 '한국 문학의 위상'(이상 2회) 등을 골랐다.

최근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 논란 등 우경화(右傾化)로 인해 한·일 관계에도 경색 조짐이 뚜렷하다. 하지만 그는 "깊은 곳에서는 한·일 지식인들이 지적인 연대와 교류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양국 사이에 이 같은 공감대가 존재할 때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