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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 감방 본 日 관람객들 "잘못했습니다" 라며 눈물 흘려 - "地下고문실 본 日 관람객들… 죄인처럼 눈도 못 마주치죠"

yellowday 2014. 8. 15. 12:30

입력 : 2014.08.15 03:06

[오늘 광복절… 서울과 도쿄의 너무 다른 모습 2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日語 해설사들이 본 일본인들

"설마 그럴 리가…" 하고 들어와 돌아갈땐 "정말 미안합니다" 매년 6만명 넘게 다녀가
유관순 열사의 감방에선 감정 잘 안 드러내는 그들도 끝내 눈물 흘리고 말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7년째 일본어 해설사로 일하는 구본식(63)씨는 늘 같은 질문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이곳을 누가 지었을까요?"

일본인 관람객들은 열이면 열 "모르겠다"고 말한다. 구씨가 "일본 사람이 지었다"고 하면 다들 의아한 눈빛이 된다. "일본 사람이 왜 지었을까요… 조선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서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극히 차분하고 조용한 일본인들이지만 구씨의 설명이 계속되면 숙연해진다. 동료 일본어 해설사 조성태(72), 이혜섭(60), 이희숙(54), 안경실(52)씨도 똑같이 경험하는 반응이다.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관람 온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사람을 좁은 공간에 세워놓는 일제강점기 고문 장비에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는 일본어 해설사 구본식씨에 따르면 이런 고문 장비들을 본 일본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나중엔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한다고 한다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 관람 온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사람을 좁은 공간에 세워놓는 일제강점기 고문 장비에 들어가 체험하고 있다. 관람객들에게 안내를 하고 있는 일본어 해설사 구본식씨에 따르면 이런 고문 장비들을 본 일본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처음엔 믿지 못하다가 나중엔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한다고 한다. /윤동진 기자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세워져 일제강점기 '경성감옥'으로 불렸다. 문서로 확인된 것만으로 독립운동가 165명이 숨진 곳이다.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일제의 잔혹한 고문 흔적, 사형장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보기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이곳을 찾는 일본인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2010년 6만1244명, 2011년 6만2060명, 2012년 6만2315명, 2013년 6만3425명. 올해는 7월 말까지 벌써 3만1071명이 다녀갔다. 외국인 관람객 10명 중 7명이 일본인이다. 국내 일본 관광객들은 급감했지만 이곳만큼은 일본인들의 발길이 증가하고 있다.

이곳에서 처음 조상의 만행을 접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우리 선조들이 정말 그랬어요?"라는 것이다. 안경실씨는 "일본인은 자신들이 꽃을 꺾을 때도 조심스러워하는 민족이라 자부한다"고 했다. 역사관을 한 바퀴 돌고 나면 그들은 고개를 숙인다. "우리가 남의 꽃밭에서 꽃을 망쳤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대문 열고 들어와 남의 집 꽃밭을 망쳤습니다."

이희숙씨는 "지하 고문실을 본 일본인들의 표정은 정말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도 지하 고문실을 보면 표정이 굳고 울지 않아도 아파하는 마음이 전달된다"고 했다. 사람을 거꾸로 매달아 고춧가루 탄 물을 콧속으로 넣었던 물고문실, 손톱 밑을 날카로운 금속으로 찔렀던 손톱 밑 찌르기 고문 현장이 재현돼 있다.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제자 5명과 함께 찾아온 다케오 후나비키(66) 전 도쿄대 교수도 손톱 고문 장면 앞에서 신음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누가 일본인에게 이런 것을 가르쳤을까 자문했다"고 말했다. 안경실씨는 "지하 고문실을 보고 나면 대다수 일본인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해설사들과 눈도 못 마주친다"고 말했다. 최고령 조성태씨는 "설명을 듣다가 무릎을 꿇고 제 다리를 붙잡더니 '유루시테 구다사이(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한 일본인 중년남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본식씨는 "일본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람이 안중근이라는 것에 놀라고, 일본인 교도관들이 안중근의 인품에 감화됐다는 얘기를 하면 일본 관람객들의 눈빛이 흔들린다"고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혼네(本音·본심)를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 눈물을 흘리고 마는 곳이 있다. 전시장 맨 마지막 유관순 열사의 8번 감방이다. 이혜섭씨는 "유 열사의 방은 특별히 잔인한 장면은 없다"고 했다. 해설사들은 담담하게 말한다. "지금의 고등학교 2학년인 열입곱 살 소녀였다. 이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었다. 일본인들은 그의 시신조차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모교 이화여고 교장이 겨우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조차 남지 않았다." 그런 설명만으로도 일본인 관람객들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울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이곳을 방문했다가 몇 달 뒤 고등학생 자녀를 데리고 온 일본인 엄마도 있었다. 수학여행 온 고등학생들도 관람 내내 천진난만하게 웃고 떠들다가도 유관순 열사 방 앞에만 오면 숙연해진다고 한다. "너희 몇 살이니? 여기 갇혔던 유관순 열사도 너희 나이였어"라는 설명 때문이다.

서대문형무소 일본어 해설사들에게 '광복절'의 의미는 남다르다. 그들은 "일본인들에게 고문 현장이나 감옥 등을 설명할 때 '일본인들이 참 독하지만 더 독한 것은 한국 사람들'이라 설명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그렇게 모진 고문을 했음에도 절대 꺾이지 않고 독립운동을 이어나간 선조를 생각하면 광복절의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