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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진짜 이유는?

yellowday 2014. 8. 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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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세계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 테러단체 하마스를 소탕한다는 이유로 인접 가자지구를 무차별 폭격해서 몇 주만에 어린이를 포함하여 민간인 1천6백명 이상을 죽게하자 이스라엘과 유태인 증오 분위기가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인들은 수없이 많은 holocaust(홀러코스트/유태인 대학살) 영화를 보아왔다.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는 히틀러와 나치스는 나쁘고 유태인은 불쌍하다는 생각만 했지, “유태인이 독일인의 미움을 살만한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나치 독일의 유태인 학살 이유를 다룬 영화를 본 일이 없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우리가 본 영화는 전부 히틀러와 나치스는 나쁘고 유태인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도록 영화가 만들어져 있었고, 그런 영화를 제작한 영화사들은 대개 유태인 돈줄과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Why did Hitler hate Jews so much? (히틀러는 왜 그렇게 유태인을 증오했는가?)라는 검색어로 Google에 들어가 보니 엄청나게 많은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은 독일의 역사학자 랄프 게오르게 로이트(Ralf-George Reuth)가 5년 전에 쓴 책이었다. 이 책의 독일어 타이틀을 영어로 번역한 것은 Jewish Hatred; Cliché and Reality인데 우리말로는 “유태인 증오: 통설과 실체”쯤 될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히틀러가 유태인을 증오한 진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영국 Daily Mail 신문이 소개했다.
 
지금까지는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전 청소년 시절의 히틀러가 빈(Wien 지금의 오스트리아 수도)에서 살 때 여러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히틀러 모친이 유태인 의사 실수로 죽었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심지어 그 의사가 유방암환자인 히틀러 모친을 성폭행까지 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빈에서 미술학교에 다닐 때 짝사랑한 독일 여자가 나중에 돈 많은 유태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 격분,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감정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적, 정치적 이유였다. 히틀러는 유태인 때문에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경제가 붕괴했고 또 유태인들이 러시아 공산혁명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1차 세계대전에 하사관으로 참전한 히틀러는 패전 독일 경제를 재건하는데 유태인들이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해를 끼쳤다고 보았다.
 
 종전 직후인 1919년 당시 독일의 민간은행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증권시장도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신문의 약 절반이 유태인 소유였으며 연쇄백화점의 80%도 유태인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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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뽑은 완벽한 독일어린이 사진의 주인공은 유태인이었다고 본인이 최근 밝혔다.

한마디로 독일 경제와 언론은 유태인이 좌지우지했다고 볼수있다. 그래서 독일의 패전을 유태인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주식시장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를 싫어했다.
 
히틀러는 또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도 유태인이 주축이 되어 일어났다고 보았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 카알 마르크스(Karl Marx), 러시아혁명 지도자 레닌과 트로츠키가 유태계 러시아인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의 정치적 초기 기반지였던 독일 뮌헨 시에서 1919년 공산주의 정권이 잠깐 등장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부터 히틀러는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로이트는 나치시대 인물 연구에 권위자로 알려진 역사가인데, 선전과 선동의 귀재라는 요셉 괴벨스 선전상의 전기도 썼다. 유태계 독일 소설가 토마스 만(노벨상수상자)도 러시아 혁명 주도 세력은 유태인이었다고 쓴 기록이 있다고 로이트는 말했다.
히틀러는 유태인들이 부자가 되면 독일 여성과 결혼하여 아리안(독일 민족)의 피를 흐려놓기 때문에 유태인 멸종을 기획했다는 설도 있다. 미국 영화 <25시>(앤소니 퀴인 주연)를 보면 나치 정권은 유태인의 특징으로 약간 가무잡잡한 얼굴색과 매부리 코를 꼽았다.
              
그런데 지난 7월 미국 대학에서 화학을 가르고 있는 85세 유태인 할머니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소재 홀러코스트 박물관에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기증했다. Hessy Taft라는 이 노교수는 그 사진의 내력을 이렇게 설명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사진은 자기가 여섯 살 때 독일 베를린의 한 사진관에서 찍은 것인데, 그 사진사가 당시 나치정권이 실시한 완벽한 독일민족 어린이 사진 공모에 출품했다. 이 공모전에서 괴벨스 선전상이 직접 그 사진을 당선작으로 뽑았다는 것이다. 사진사는 그 사진의 주인공이 유태인인줄 알면서도 끝내 비밀로 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당시 유명한 한 독일 가정잡지의 표지를 장식했고 우편엽서에도 올려졌다고 한다.
 
워싱턴에서
조화유

 

 

조화유 재미 작가,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 (曺和裕 / W.Y. JOH)

칼럼니스트 사진

경남 거창 출생. 부산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다가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 Western Michigan University 대학원에서 韓美관계사를 연구한 뒤 미국에 정착했다.

도미 전 응시한 TOEFL에서 어휘 및 작문 부문 세계 최고점수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1970년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흉일”이 당선, 문단에 데뷔했다. 1998년 문학작품집 “이것이 정말 내가 쓰고 싶었던 글들이다”를 냈고, 2010년엔 두 번째 작품집 “전쟁과 사랑”을 출간했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 “다대포에서 생긴 일”은 한국비평문학회가 “2003년의 문제소설”로 선정하였고, 이 소설을 직접 영어로 다시 쓴 Heaven Knows What Happened at Dadaepo는 amazon.com에서 eBook으로도 나왔다.

미주동포들을 위해 쓴 “미국생활영어” 전10권은 1990년대 조선일보사가 “이것이 미국영어다” 전10권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만 100만부 이상 보급되었고, 중국, 대만, 일본에서도 각각 그 나라 글로 번역 출판되었다. 1996~7년에는 “레미제라블” “파리의 노틀담”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씨이저” “왕자와 거지” 등 세계명작을 한영대역 만화로 재구성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했다.
현재 워싱턴 교외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메일 johbooks@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