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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유산 속 수학의 재발견

yellowday 2014. 8. 6. 18:09

입력 : 2014.08.05 09:31

우리 문화유산 속 수학의 재발견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서로 결합함으로써 엄청난 ‘경우의 수’를 만들어내는 수학적인 문자이며, 한글이 만들어진 시대에는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결정체인 귀중한 수학책의 간행도 이루어졌다. 신라 첨성대는 천문과 절기, 건축 구조 등에서 다양한 수학적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 중 압권은 석불사(석굴암)이다. 시대를 초월한 우리의 여러 문화재 속에 담긴 수학적 원리와 그 미적 가치에 대해 살펴본다.

하늘의 뜻을 세종이 대신한 ‘훈민정음’
한글은 만든 사람과 만든 시기, 만든 원리가 기록으로 전해오는 세계 유일의 문자이다. 문자로써 한 소리로만 읽히며, 한 소리는 하나의 한글 문자로만 표기되므로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쓰기에도 편하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을 만드는데 수학적인 질서를 적용한 문자를 만들었다. 한글은 소리의 변화를 문자 형태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는 일련의 수학적 조작이다. 자음과 모음을 결합해서 만드는 글자는 마치 원자가 모여 분자가 되고, 분자가 모여 다양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자연의 이치를 닮았다.

또한 초성과 중성, 종성이 서로 모여서 실제 다양한 소리를 적어낼 수 있는 놀라운 수의 음절자를 생성하게 했다. 현대 한글의 경우 초성 19개, 중성 21개, 종성 27개를 ‘가갸거겨’식으로 조합하면 무려 1만1,172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

15세기에 사용된 문자를 현대식으로 조합하면 3만 자가 넘고, 『훈민정음』 해례본의 조합 원리를 적용하면 무려 399억여 자(39, 856, 772, 340)가 생성된다. 이런 원리 때문에 세종은 닭 울음소리, 바람 소리, 개짖는 소리 그 어떤 소리도 다 적을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한글은 점과 선과 원만으로 구성된 완벽한 대칭 구조이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서 ‘가’의 경우 자음을 고정시키고 모음을 90도씩 틀면 각각 ‘가, 구, 고, 거’ 네 글자가 만들어진다. 이는 최소의 문자수로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글자를 만들어 내는 위상수학의 원리다. 자음과 모음의 도형 원리를 달리해 위와 아래의 결합된 도형을 통해 가로 적기와 세로적기를 모두 가능하게 한다. 지구상의 문자 중 컴퓨터 자판에 가장 최적화된 문자라는 칭송을 받는다.

왕에게 수학책을 진상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433년(세종 15) 8월 25일에 일어난 일이 적혀있다.

『양휘산법(보물 제1755호)』은 현재의 고차방정식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어려운 수학책이다. 그 책 한 권을 경상감사 신인손(辛引孫, 1384~1445)은 중국에서 어렵게 구해 내용을 한 자씩 나무에 새겼다. 지금 우리가 목판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책 한 권을 복사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 중국의 수학책을 구한 다음, 그 내용을 나무에 새겨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한지에 한 장 한 장 찍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진귀한 음식이나 아름다운 비단이나 황금이 아니라 수학책을 백 권이나 서울로 보냈다는 것은 유래가 없는 사건이다. 어느 나라에서 왕에게 신하가 수학책을 진상했단 말인가? 세종은 이 책을 요긴하게 쓸 부서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나누어 하사한 기관들 중 집현전은 조선 최고의 젊은 수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곳이다. 여기서 수학을 사서삼경과 함께 공부했다. 또, 호조(戶曹)로 이 수학책을 보낸 것은 그만큼 실제 국민의 경제생활과 수학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임금이 아주 잘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을 바친 경상감사 신인손은 그 뒤 병조판서와 대제학에 오르게 된다. 좋은 신하를 알아보는 위대한 임금의 해피엔딩 스토리이다. 지금 이 책은 중국에는 한 권도 없고, 임진왜란 때 약탈당한 한 부는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여왕(女王)의 첨성대
첨성대(국보 제31호)는 우리 민족의 수학적 힘을 잘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석조물은 동아시아 3국 중 우리가 유일하다. 첨성대 밑의 원형과 정사각형은 수학책 『주비산경(周?算經)』에 있는 방원도(方圓圖)를 이용했다. 돌로 쌓아올린 27개의 동심원 맨 꼭대기에 ‘井’자형의 돌을 얹은 것은 28개 별자리의 운행을 상징한다. 또 밑 부분 돌의 12개는 12개월(1년)을 의미한다. 1층에서 6층까지의 돌의 수는 16·15·15·16·16·15로 동지에서 소한, 소한에서 대한, 대한에서 입춘, 입춘에서 우수, 우수에서 경칩, 경칩에서 춘분 사이의 일수이다. 27단까지와 꼭대기의 정(井)자형의 돌의 개수는 모두 366개로, 일년의 날 수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밑받침의 돌은 동서남북 방향이고 맨 위 돌은 8방위에 맞추었으며 창문은 정남향이다. 정남으로 향한 창은 춘분과 추분에서 태양이 정확히 남쪽에 있을 때 햇살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환하게 비친다.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햇살이 사라지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분을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정확하게 지금도 맞는다는 사실에서 놀라운 신라 수학의 정밀성을 보여준다.

첨성대의 기단의 대각선과 첨성대의 높이의 비는 약 0.8 , 즉 4/5 가 되고, 정자석 한 변과 1단 원의 지름의 비는 약 0.6, 즉 3/5이다. 그리고 최상단의 원지름과 중앙부에 있는 창의 한 변 길이의 비는 약 3이다. 3,4/5, 3/5는 원주율과 피타고라스정리에서 나오는 3:4:5의 값이다. 이것은 첨성대가 그 시대 세계 제일의 철저한 수학적 구조물임을 말해준다. 이런 아름답고도 정확한 건축물이 만들어진 이유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의 애민사상일 것이다.

우리 수학의 백미, ‘석불사(석굴암)’
경주는 신라의 수준 높은 수학적 산물이 곳곳에 널려있다. 751년경에 건조된 경주의 석불사(석굴암)(국보 제24호)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도 등재됐다. 동해에서 해가 뜨는 순간 한줄기 태양의 빛이 석불사 부처님 이마의 한 점으로 반사된다. 그리고 그 빛은 앞에서 기도하는 중생에게 떨어진다. 그 환상적인 장면은 각도와 고도의 정밀한 측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석불사는 공간마다 이상적인 비례배분을 적용했다. 즉 삼각비나 원, 원주율(π)을 모르면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건축물이다. 석불사 불상의 얼굴너비는 2.2자, 가슴 폭은 4.4자, 어깨 폭은 6.6자, 양 무릎의 너비는 8.8자이다. 얼굴 : 가슴 : 어깨 : 무릎 = 1 : 2 : 3 : 4의 비율이다. 그리고 기준이 된 1.1자는 불상 자체 총 높이의 1/10이다. 신라인들은 안정감과 아름다움의 비율을 이미 알고 있었고 석불사의 공간마다 이상적인 비례배분을 적용했다.

또 석불사 전체의 구조를 기하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모든 공간이 가로 : 세로 또는 세로 : 가로의 비율이 1 : 2인 직사각형으로 이뤄져 있다. 둥그런 천장의 원호를 정확하게 10등분해낸 계산능력은 불가사의한 신라 수학의 산물이다. 물리학자 남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수학은 일찍부터 발전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수학에서도 통치계급의 학정과 외침(外侵)에 의해 방해받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하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수학적 업적조차 연구하지 못하게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지 못하듯이 우리 조상들의 수학은 가려질 일이 아니다. 우리의 문화재 속에는 선조들의 찬란한 수학이 아직도 숨 쉬고 있다.


글 이장주(성균관대학교 수학교육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