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한 해 관광객 1천만 명' 베르사유궁에 우뚝 선 한국 거장의 美

yellowday 2014. 6. 17. 17:45

입력 : 2014.06.16 02:57 / 수정 : 2014.06.16 05:38

[이우환, 佛서 11월 2일까지 거대아치 모양 작품 등 10점 전시]

2008년부터 쿤스·페노네 등 세계적인 작가 엄선해 개최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선정돼… 정원에 9개·宮에 1개 선보여, 돌과 철이 만드는 '이중주'
"宮의 氣에 억눌리지 않고 주변 환경과 매력적 조화"

"와, 쇠 무지개다!" 지난 12일(현지 시각) '절대왕정의 꽃'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궁전으로 손꼽히는 프랑스 베르사유의 베르사유 궁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날, 수학여행 온 개구쟁이 한 무리가 고풍스러운 궁전 앞에 설치된 대형 철제 아치 아래로 뛰어들어갔다. 길이 30m, 폭 3m 스테인리스 철판을 최대 높이 12m의 반원 형태로 둥그렇게 휘어 만든 이 구조물은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바로 앞에 세워졌다. 양끝엔 두루뭉술한 큰 돌덩이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아치 아래 멈춰 서서 발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풍경을 내려다봤다.

"이만하면 됐다. 내 이름을 안다거나,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그런 건 몰라도 된다. '이게 뭐야' '희한하네' 이런 반응도 괜찮다. 사람들이 잠깐 발걸음 멈추고 궁 전체를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 그게 내 의도였으니까." 이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치 모양의 작품 '관계항(關係項)―베르사유의 아치(Relatum―L'Arche de Versailles)'를 만든 작가 이우환(78)이었다.


	높이 12m, 호 길이 30m 반원 형태의 조각 작품‘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왼쪽 위 사진).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세워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공간을 새롭게 느끼게 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마주 보는 두 돌과 철판으로 만든‘관계항?대화 X’. 뒤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관계항?앙드레 르 노트르를 향한 오마주’. 베르사유궁 정원을 설계한 앙드레르 노트르를 기리며 무덤처럼 땅을 파 커다란 돌덩이를 넣었다.
높이 12m, 호 길이 30m 반원 형태의 조각 작품‘관계항—베르사유의 아치’(왼쪽 위 사진). 궁전에서 정원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세워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공간을 새롭게 느끼게 했다. 왼쪽 아래 사진은 마주 보는 두 돌과 철판으로 만든‘관계항—대화 X’. 뒤로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관계항—앙드레 르 노트르를 향한 오마주’. 베르사유궁 정원을 설계한 앙드레르 노트르를 기리며 무덤처럼 땅을 파 커다란 돌덩이를 넣었다. /김미리 기자·이우환 제공
한 해 관광객 1000만명이 찾는 세계적 문화유산 베르사유궁이 한국 작가 이우환의 전시장이 됐다. 2008년부터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주세페 페노네 등 해마다 세계적인 작가를 엄선해 전시를 열어온 베르사유궁은 올해 그 주인공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우환을 선정했다. 작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베르사유궁에서 연 '아해 사진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시다. 카트린 페가르 베르사유궁 박물관장은 "'아해 전시'는 돈 받고 대관해 주는 공간 '오랑주리'에서 열린 이벤트였을 뿐이다. 이우환 전시는 베르사유궁의 이름을 걸고 하는 매우 권위 있는 전시"라며 선을 그었다.

이우환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큰 스케일의 작업을, 이런 역사적인 공간에서 하는 건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아니겠나"고 말했다. 공식 개막에 앞서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엔 기자 100여명이 참석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다음 날 이 전시 리뷰에 전면을 할애했다.

17일 공식 개막해 11월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이우환은 작품 10개를 선보인다. 정원에 9개, 궁 안에 1개가 들어갔다. 자연, 시간을 상징하는 돌(石)과 산업사회의 상징인 철(鐵)을 이용해 문명과의 관계를 얘기하는 이우환의 조각 시리즈 '관계항(Relatum)'의 연장선에서 만든 작품이다. 숲 속, 호수 옆, 잔디밭…. 발길이 스치는 곳곳에서 만난 이우환의 작품은 베르사유궁의 기(氣)에 전혀 억눌리지 않고 오롯이 빛났다. 리처드 바인 아트인아메리카 수석 편집장은 "개체마다 독립적이면서도 놓인 환경과 매력적인 조화를 이룬다"고 호평했다. 전시를 기획한 알프레드 파크망 전 퐁피두센터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장도 "미학적, 형식적으로 베르사유궁의 풍경을 한 번에 전환한(transform) 역작"이라고 평했다.

경남 함안 출신인 이우환은 서울대 미대를 중퇴하고 1956년 일본으로 가 니혼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1960년대 말 일본에서 진보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끌었다. 현재 한국, 프랑스,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베르사유궁에서 만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선생이 2011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에 이어 잇따라 대규모 전시를 열면서 마에스트로 반열에 오르신 것 같다"며 "이번 전시는 우리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기념비적인 전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