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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 승전과 맹골수도에서의 대참사...이순신 장군을 뵐 낯이 없다

yellowday 2014. 4. 24. 16:25

 

등록일 : 2014-04-24 오후 3:06:00  |  수정일 : 2014-04-2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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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과 진도를 가로지르는 울돌목 해협에 거친 물살이 초속 5~6m의 속도로 출렁이며 흐르고 있다./한국해양연구원제공. 조선DB


지금 우리나라는 서해 진도 앞바다에서의 세월호 침몰 참사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다. 참사는 울돌목(명량해협; 鳴梁海峽) 다음으로 조류가 빠르고 거세다는 맹골수도에서 일어났다. 맹골수도(孟骨水道)는 진도 남서쪽의 맹골군도(孟骨群島)와 거차군도 사이에 있는 수도(水道)이며 길이 6km, 폭 4.5km에 달한다. 수심은 37m~38m이며 암초는 없지만 맹골수도 물살은 최대 6노트(약 11km/h)에 이른다. 서해안을 드나드는 밀물과 썰물이 섬과 섬 사이를 드나들며 병목현상이 일어나 물살이 빨라지게 된다. 6시간에 한번씩 밀물과 썰물이 바뀌며 선원들 사이에서도 대표적 위험 항로로 꼽히며 평소 안개가 자주 껴 시야 확보가 어려운 곳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험란한 곳을 통과하는데도 한국 최대의 여객선 선장은 초보인 3등 항해사에게 배의 운항을 맡겼다. 그런데 사고는 이미 그 이전에 잉태되고 있었다. 그동안 다만 운좋게 사고없이 지나갔던 것뿐이다. 이번 참사는 짙은 안개 속에서의 무리한 출항에서부터 운항상 실수, 노후화된 선박, 과적화물, 늑장 신고, 부실한 비상 대피 매뉴얼, 선장과 승무원들의 승객 대피 외면 등이 겹쳐진 최악의 ‘인재’(人災)였다. 대형 사고에 대한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됐지만 누구 한 명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더우기 가장 큰 문제는 사고 직후 선장을 포함한 대부분 승무원들의 행동이 끔찍한 참사를 키웠다. 배의 구조와 바다를 가장 잘 아는 자들이 꽃다운 학생들이 대부분인 승객들을 침몰해가는 배에 유기시킨 채 자기들 먼저 탈출했다. “세계해운과 해운업계는 세월호 선장의 배포기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뉴욕타임즈지는 보도했다. “승객들을 포기한 선장의 대응방식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고 영국의 가디언지도 보도했다. 
 
그들은 자기들만 먼저 살려고 했으나 실상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처지가 됐다. 필자는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태를 보면서 충무공 이순신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반드시 살려고 하면 곧 죽게 될 것이요, 반드시 죽으려고 하면 곧 살게 될 것이다)’ 말씀이 떠올랐다. 이순신 장군(제독)은 1591년 2월 정읍현감에서 진도군수로 발령받고 다시  며칠 만에 전라좌수사로 제수되어 여수로 부임하면서 현재 진도대교가 있는 울돌목(명량해협)을 왕복하게 된다.
 
보통사람이 건너갔으며 물살 한번 세다 하고 지나쳤을 것이나 병법의 달인이며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장군에게 울돌목은 나라를 구하는 결전장으로 보였다. 수심이 얕고 급경사에다 암초까지 있어 급조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조류가 바뀔 때 빠른 물살이 좁은 해협을 통과하느라 내는 굉음은 그야말로 울고 돌아가는 ‘울돌목’이 되었다. 더욱이 120m~290m의 좁은 해협은 아무리 많은 왜선이라 할지라도 적은 규모의 배로서 족히 싸워 이길 수 있는 장소(전지; 戰地)였다. 
   
1597년 보름 다음 날인 음력 9월 16일 파고는 가장 높은 사리의 대고조로서 이순신의 13척은 도도의 330척 대함대를 울돌목으로 유인하였다. 이날 아침 6시 32분에 바뀐 조류는 북서류로 초속 4.8m의 가장 빠른 역류였다. 왜선의 제 1진 130여척 중 선봉인 구르시마의 31척 선단은 빠른 순류를 타고 의기양양하게 돌진하였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한 이순신의 13척은 8시경부터 4시간 이상 역류를 견디면서 10배 이상의 왜선 대함대와 맞섰다. 드디어 조류가 북서류에서 남동류로 바뀌는 12시 18분을 기하여 이순신은 초속 2.8m의 순류를 타고 선본장 구르시마의 목을 포함하여 31척을 격파하여 세계해전사에 유례없는 명량대첩의 쾌거를 이뤘다.
 
울돌목에서의 명량해전은 이순신 통제사를 중심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서 자신들도 살고 백척간두의 나라도 구해 냈다. 그러나 427년 지난 지금 맹골수도에의 세월호는 선장을 중심으로 자신들만 살려고 했다가 자신들도 죽은거나 다름없고 나라까지 망신시키고 있다. 오는(지난)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469주년 탄신일이다. 충무공을 뵐 낯이 없다.  글 |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