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人物

조르주 상드 [George Sand] - 1804. 7. 1 프랑스 파리~ 1876. 6. 8 노앙.

yellowday 2014. 4. 15. 09:08
파일:Die junge George Sand.jpg

 

 

본명은 Amandine-Aurore-Lucile(Lucie) Dudevant. 결혼 전 성은 Dupin. 1804. 7. 1 프랑스 파리~ 1876. 6. 8 노앙.

프랑스의 낭만주의 작가.

 

이른바 전원소설과 숱한 연애 사건으로 유명하다.

상드는 베리의 라샤트르 근처에 있는 노앙의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이곳에서 그녀는 시골을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런 애정과 이해는 그녀의 작품 대부분의 특징이 되었다. 1817년에 그녀는 파리의 수녀원으로 보내졌고, 이곳에서 신비주의에 열광했다. 이 열정은 곧 줄어들었지만 그녀에게 오랜 흔적을 남겼다.

1822년에 그녀는 카지미르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여 몇 년 동안은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착하지만 다소 둔감한 남편에게 곧 싫증을 느낀 그녀는 처음에는 젊은 행정관과 나눈 정신적인 우정 속에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이웃 남자와 나눈 열정적인 밀애에서 위안을 찾았다. 1831년 1월에 그녀는 노앙을 떠나 파리로 가서 〈피가로 Le Figaro〉지의 중역인 앙리 드 라투슈와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 언론인은 그녀가, 쥘 상도와 함께 쥘 상드라는 필명으로 쓴 기사를 신문에 실어주곤 했다. 1832년에 그녀는 쥘 상도와 관계 없이 혼자 쓴 소설 〈앵디아나 Indiana〉를 발표하면서 조르주 상드라는 새로운 필명을 채택했다. 그녀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이 소설은 아내를 억지로 남편에게 묶어놓는 사회적 인습에 열렬히 항의하는 한편, 불행한 결혼생활을 버리고 사랑을 찾는 여주인공을 옹호하고 있다. 자유분방한 교제라는 이상은 〈발랑틴 Valentine〉(1832)·〈렐리아 Lélia〉(1833)에서 좀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와 계급관계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상드는 농부나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많이 썼는데, 〈발랑틴〉은 그 첫번째 소설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상드와 연애관계를 맺은 남자들의 명단은 차츰 늘어나, 급기야는 프로스페르 메리메, 알프레드 드 뮈세, 프레데리크 쇼팽도 거기에 포함되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상드는 애인을 차례로 바꾸며 그들의 견해에 맞추어 자신의 철학과 정치관을 바꾼 이상성욕자라는 인상을 일반에게 심어주었지만, 이런 관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상드는 한 남자한테서 완벽에 가까운 무엇인가를 찾아냈다고 여겨지면, 그와 여러 해 동안 동거하면서 애인이라기보다는 어머니 같은 애정으로 상대를 보살폈다. 예컨대 상드는 쇼팽이 말다툼 끝에 자기 곁을 떠날 때까지 8년 동안 쇼팽과 동거했다. 상드는 뮈세의 회의주의적 견해나 쇼팽의 귀족적 편견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은 반면, 애인이 아닌 철학자 피에르 르루의 견해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렐리아〉·〈모프라 Mauprat〉(1837)·〈스피리디옹 Spiridion〉(1839)·〈리라의 7현 Les sept Cordes de la lyre〉(1840) 등 초기 작품이 대부분 그녀와 관계를 맺은 남자들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상드는 전원소설에서 자신의 진정한 형식을 발견했다. 이 전원소설들은 평생 동안 계속된 시골에 대한 애정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에서 주로 영감을 얻었다. 〈악마의 늪 La Mare au diable〉(1846)·〈사생아 프랑수아 Fran&sc#162l;ois le Champi〉(1848)·〈어린 파데트 La Petite Fadette〉(1849)에서는 조르주 상드 작품의 낯익은 주제(인습과 계급의 장애를 뛰어넘는 사랑)가 낯익은 베리의 시골을 무대로 하여 고장의 자부심을 되찾았다. 이 시골 이야기들은 아마 상드의 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일 것이다. 말년에 상드는 나무랄 데 없는 도덕성을 가진 보수주의적 소설과 희곡을 썼다. 후기 작품 가운데 기억될 만한 작품은 자서전인 〈내 삶의 이야기 Histoire de ma vie〉(1854~55)와 상드가 손자들을 위해 쓴 단편소설집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 Contes d'une grand-mère〉(1873)뿐이다.

 

상드가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위대한 작가로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곧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상드는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빨리 글을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확실히 상드는 놀랄 만큼 유창하게 글을 썼다. 작가로서 상드는 이상주의자였고, 회고록에서는 현실의 불쾌한 측면에 눈을 감은 반면 소설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순결하고 매력적인 인물들을 창조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상드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고, 어린이 같은 낙천주의와 삶에 대한 천진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소설들이 동화 같고 주인공인 농부들이 선량하고 친절하며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상드는 이렇게 선언했다. "소설이 반드시 현실의 표상일 필요는 없다."  

 

 

주요작품

 

  • 연애 소설 《앵디아나》 (1832년)
  • 자서전적 애정소설 《렐리아》 (1833년)
  • 인도주의적 사회소설 《콩쉬엘로》 (Consuelo, 1842년)
  • 전원소설 《마(魔)의 늪》 (1846년)
  • 기아 프랑수아》 (1848년)
  • 사랑의 요정》 (1849년)
  • 피리 부는 사람들의 무리》 (1853년)
  • 회상록 《내 생애의 역사》 (1854년 ∼ 1855년) 등.
  • 특히 그의 편지(26권)는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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