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 가본 國外

항저우 서호의 단교잔설(斷橋殘雪)을 볼 수 있을까

yellowday 2014. 3. 4. 16:40


중원의 영웅호걸과 당대 문장가들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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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주와 소주가 있다. (上有天堂 下有蘇杭)" 

"가장 이상적인 삶은 ''소주에서 나서 항주에서 살고, 광주의 음식을 먹고 유주에서 죽는 것''이다." 

동중국해 연안에 자리한 절강성(浙江省) 성도 항저우(杭州 항주)를 칭하는 중국 속담들이다. 13세기에 이탈리아 여행가 마르코폴로가 들렀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흠뻑 매료됐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듯 하다. 

춘추시대에 오(吳)·월(越) 두 나라가 패권을 다투며 ''오월동주(吳越同舟)'',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를 탄생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2200년 전 진시황제가 천하통일 후 이 곳에 전당현(錢糖縣)을 설치한 것이 항저우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수나라때 항저우로 개칭했고, 오대십국시대 오월(吳越 893~978년), 남송(南宋 1127~1279년)의 도읍지로 번성하면서 제왕 14명이 머물렀던,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로 중국 10대 명승지에 꼽힌다. 

항저우를 보려면 서호(西湖)를 빼놓을 수 없다. 중국 내에서 서호란 이름의 호수는 36개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항저우의 서호가 가장 유명한 것은 이 곳의 풍광이 더없이 수려할 뿐 아니라 특히 전설과 역사가 깃들어 수많은 문인과 학자, 묵객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고대 4대 미녀중 한 명으로 불리는 서시(西施)의 아름다움에 비견해 서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기원전 5세기 춘추시대 월(越)왕 구천(句踐)이 오(吳)왕 부차(夫差)에게 설욕하고자 절강성 소흥(紹興)출신인 서시로 그를 미혹시켜 국사를 그르치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서호는 서시의 또다른 이름인 서자(西子)의 이름을 따서 서자호(西子湖)라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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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시대(1089년) 항주자사로 왔던 소동파(蘇東坡)는 서호를 서시에 비교한 ''''음호상일초청후우(飮湖上一初晴後雨)''''라는 유명한 칠언절구의 시를 남기기도 했다. 

水光瀲 晴方好 山色空濠雨亦奇 浴把西湖比西子 淡粧濃抹總相宣 

(물빛이 빛나고 맑으니 마침 좋고 비 오는 모습과 어우러진 산색이 또한 기이하네 서호를 서시에게 비교한다면 옅은 화장이나 짙은 화장이나 다 아름답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서호는 둘레가 15km, 총면적은 60km², 평균 수심 2.7m인데, 세 개의 제방 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놓인 2.8km의 소제(蘇堤)는 소동파가 준설한 것으로 20만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또 호수 북쪽 1km의 제방인 백제(白堤)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항주태수로 있을 때 쌓은 것이다. 

서호는 또 백사전(白蛇傳) 전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의 비극적 전설의 배경이기도 하다. 모두 중국 4대 민간전설에 포함된다. 

남송 시기부터 전해져오는 백사전 전설은 천년 묵은 백사가 사람으로 변신해 전생에 자신을 구해준 서생 허선에게 은혜를 보답한다는 내용으로 지금에 이르러서도 많은 영화와 드라마 등이 제작됐다.

백사전 전설로 유명해진 것이 뇌봉탑(雷峰塔)이다. 백사가 허선을 살려내려다 뇌봉탑에 갇혔다는 얘기로 탑에는 전설을 입체적인 장면으로 전시하고 있다. 

서호 남안 석조산(夕照山)에 있는 뇌봉탑은 975년 오월(吳越)왕 전홍숙(錢弘俶)이 득남한 것을 기념해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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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8각형 5층의 벽돌과 나무로 지어졌으나 목조부는 명대에 왜구의 방화로 소실되고 남아 있던 벽돌도 병을 물리친다는 속설에 수많은 사람들이 빼가면서 훼손됐다. 

1924년에는 남아있던 탑마저 모두 무너져버렸고 지금의 뇌봉탑은 2002년에 재건된 것이다. 

서호는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광을 보여 남송시대 선비들이 그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10곳을 뽑아 서호 10경(西湖十景)이라 불렀는데, 현지인들에 따르면 이중 단교잔설(斷橋殘雪)이 최고라 한다. 

단교는 백제(白提)의 동쪽 끝에 당대에 세운 다리로, 겨울에 눈이 내렸다가 햇볕에 녹으면 멀리서 보았을 때 다리 가운데가 끊어진 것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안타깝게도 요즘 항주에는 거의 눈을 볼 수 없다고 한다. 

원래 강남지역이라 눈이 내려도 금세 녹아버린다지만 그런 눈조차 내리지 않는다면 지구 온난화의 영향 때문 아닐까 싶다. 남송시대 문인들은 천년 후손들이 단교잔설의 운치를 볼 수 없음을 예상이나 했을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