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난 집 맛난 얘기]
서울시 가양동 <광주똑순이 아귀찜>
매운맛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아귀찜은 매력적인 음식이다. 1950년대 말 경남 마산에서 탄생한 아귀찜 맛의 인기는 대단했던 모양이다. 버림받았던 아귀가 찜으로 재탄생하자 술꾼들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받으면서 전국으로 급속히 번졌다. 짧은 시간에 아귀찜은 마산에서 광주까지 영토를 넓혔다. 1970년대 광주에도 사람들이 몰리는 아귀찜 식당이 생겼다. 광주광역시 불로동의 ‘똑순이 아귀찜’이었다. 광주 시민들에겐 제법 알려진 이 집의 주인장은 서울 사는 올케에게 조리법을 전수시키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광주똑순이 아귀찜>은 광주의 시누이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그 맛을 지금도 서울에서 이어간다.
제상에 올라간 아귀찜, 식어도 제 맛
이 집에는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사이 좋게 아귀찜을 먹으러 왔던 형제가 있었다. 젊은 형제도 그랬지만 노인께서 이 집 아귀찜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한 달에 최소한 서너 번은 다녀가는 단골 손님들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발길이 끊어졌다.
된장으로 맛내 비리지 않고 구수한 매운맛 일품
이 집 아귀찜은 양도 넉넉하지만 아귀 속살이 탱탱하다. 가끔 만났던 흐물흐물한 물 아귀가 아니다. 마치 복어나 쏘가리를 씹는 느낌이 든다. 사실 아귀 자체는 그다지 맛난 생선은 아니다. 감칠맛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고소한 맛이 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귀는 오랫동안 버림받아왔던 것이다. 아귀찜 맛은 식재료의 맛보다 양념 맛이 크게 좌우한다.
이 집은 무엇보다 된장 육수를 최대한 활용한다. 우선 양질의 아귀를 된장 육수로 숙성시킨다. 이 과정에서 비린내를 잡고 아귀 살의 밑간도 든다. 기본 맛을 확실하게 잡아가는 과정이다. 된장 사우나를 마친 아귀를 다른 식재료와 찔 때도 역시 된장 육수는 맛의 중심을 확실하게 지킨다. 정작 완성된 아귀찜에서 된장 냄새는 그다지 풍기지 않지만.
화학조미료를 싫어하는 주인장이 가급적 조미료 대신 된장과 재래 간장, 고춧가루와 멸치국물로 맛을 냈다. 이들 양념과 미나리, 콩나물 등의 부재료, 그리고 아귀 살이 서로 겉돌지 않는다. 전분기 없이 걸쭉하지 않고 명료하게 떨어지는 맛도 좋다. 가끔씩 씹히는 아귀의 위(胃)가 마치 닭 모래주머니처럼 쫄깃하다.
‘명품 조연’ 맞춤형 콩나물 사용, 간장게장도 수준급
접시의 아귀찜을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먹다 보면 눈치가 보인다. 유물 발굴하듯 콩나물 더미 속을 한참 뒤적거리다 아귀 살을 발견해도 소신껏 먹기 어렵다. 들어간 아귀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2~3인이 먹을 수 있는 중자(4만5000원)와 3~4인용인 대자(5만8000원) 두 가지 모두 실팍한 아귀 살이 제법 푸짐하다.
고소한 들깨 미역국, 개운한 백김치, 달달한 호박조림, 양배추 샐러드와 된장 소스 샐러드 등 밑반찬도 녹록하지 않은 주인장의 내공이 스며있다. 먹고 남은 것에 밥을 넣고 볶아먹는 맛도 일품이다. 김과 날치알, 고소한 참기름으로 볶은 밥은 먹을수록 당긴다.
이 집은 게장 맛으로도 소문이 자자하다. 살짝 구운 김에 밥은 얹고 날치알과 게장의 간장을 적신 다음 먹으면 고소함과 풍미가 최고다. 4명쯤 식사를 한다면 아귀찜 중(中)자와 간장게장정식(2만5000원)을 주문하면 골고루 맛볼 수 있다.
불교에서는 탐욕을 부리면 아귀도에 떨어진다고 한다. 어쩌다 입 크고 몸과 목구멍은 작은 귀신인 아귀(餓鬼)를 닮아버린 생선, 아귀. 살아서 비록 탐욕스러웠을 망정 마지막은 제 몸을 남김없이 주고 간다. 거죽은 부처를 닮았지만 아귀를 남김없이 발라먹는 나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