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싱어 사전트(영어: John Singer Sargent 1856년 1월 12일 ~ 1925년 4월 14일)는 부유한 미국가정에서 태어난 사전트는 동시대의 가장 유명한 초상화가로 상류사회를 주로 그렸다. 그는 개인미술교육을 받았고, 이를 통해 유럽미술을 접했다.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섬세하고도 에로틱한 상류사회 한 부인의 초상화 “Madame X” 는 스캔들까지 만들어, 그는 어쩔 수 없이 런던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전트는 부유한 상류사회 후원자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가장 유명하다.
출생-사망 | 1856년 1월 12일 ~ 1925년 4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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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사망지 | 이탈리아 피렌체 - 영국 런던 |
예술양식 | 풍경화, 사진처럼 사실적인 상류사회 인사들의 초상화, 부유하고 유명하며 매력적인 상류층 묘사, 화려한 직물의 재현, 정교한 세부묘사 |
작품 | 미술작품 감상하기 |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매력적이고 지적이었던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추운 다락방에서 그림을 그리던 가난하고 불우한 예술가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실패라고는 거의 모른 채, 예술적 성공과 개인적 성취들로만 채워졌던 그의 삶은 소설의 소재로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흔히 미국 화가로 분류되는 사전트는 그의 출생에 관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탈리아 피렌체에 살고 있던 미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보냈으며, 부모의 고향인 미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것도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기 바로 직전이었다.
사전트는 파리에서 당시 저명한 초상화가였던 에밀 오귀스트 카롤뤼 뒤랑으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스승과 제자 둘 다 파리 예술계의 엘리트 층으로 무난하게 입성했다. 사전트는 인상주의 화가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전부 다 사전트와 그의 작품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전트는 특히 클로드 모네와 친밀하면서도 유익한 우정을 나눴다.
맨 처음 사전트의 작품은 파리의 주류 미술계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의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1883~1884)으로 일어난 스캔들 때문에 그는 파리를 떠나야 했다. 당시 그는 겨우 스물여덟 살이었고, 이후 사전트는 런던에 정착했다. 그러나 사전트는 자주 여행을 다녔고, 또 의뢰받은 작품들을 그리기 위해 빈번히 미국을 방문했던 탓에, 한 번에 몇 달 이상을 영국에서 머물렀던 적은 좀처럼 없었다.
부자와 빈민의 초상
그의 초상화법 덕분에 사전트는 세계에서 가장 지위가 높고 부유한 이들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다. 영국의 귀족부터 미국의 대통령,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만장자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사전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다. 사전트는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줌으로써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소외 계층의 사람들을 그리는 데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집도 없고 가난에 찌든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들의 고용주들만큼이나 중요한 인물로 보이도록 표현했다. 이 초상화들에서는 그들의 고된 노동에 대한 사전트의 깊은 이해와 감탄이 잘 드러난다. <엘 할레오>(1882)는 커다란 캔버스에 춤추는 집시의 모습을 그린 사전트의 대표적인 빈민의 초상화다. 이 초상 인물은 사전트가 높은 금액을 받고서 초상화를 그려주었던 부유한 상류층들의 초상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열정적이며 뛰어나게 묘사되었다.
생애 후반기에 들어 사전트는 풍경화와 풍속화를 그리기 시작했으며, 유채물감 대신 수채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전트는 종종 인상주의 화가로 언급되곤 한다. 그가 모네와 함께 작업한 것도 사실이고, 또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1885~1886)와 같은 작품에서는 인상주의적인 기법을 시도한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인상주의는 사전트의 미술에 영감을 제공했던 수많은 기법들 중 하나에 불과할 뿐, 이를 통해 그를 인상주의 화가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사전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으며, 오로지 그림만을 그리며 살았다. 그는 간혹 미술을 통해 정치적 표현을 하기도 했다.
마담 X
오늘날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은 사실상 거의 실패작이었다. 뇌쇄적인 드레스를 입고서 도자기처럼 흰 피부를 뽐내는 이 여인의 초상화는 포르노그래픽 같다는 혹평까지 들었다. (원래 그림에서는 오른쪽 어깨끈이 밑으로 흘러내린 모습이었다. 맙소사!)
파리 살롱에서는 이 작품의 전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굴욕감과 분노를 느낀 사전트는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갔다. 결국 그는 이 작품 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판매했다.
마담 X
오늘날 사전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마담 X(피에르 고트로 부인)>은 사실상 거의 실패작이었다. 뇌쇄적인 드레스를 입고서 도자기처럼 흰 피부를 뽐내는 이 여인의 초상화는 포르노그래픽 같다는 혹평까지 들었다. (원래 그림에서는 오른쪽 어깨끈이 밑으로 흘러내린 모습이었다. 맙소사!)
파리 살롱에서는 이 작품의 전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굴욕감과 분노를 느낀 사전트는 프랑스를 떠나 영국으로 갔다. 결국 그는 이 작품 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판매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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