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피츠제럴드 "잭" 케네디(John Fitzgerald "Jack" Kennedy, 1917년 5월 29일 ~ 1963년 11월 22일)는
케네디는 대통령직에 고작 2년밖에 있지 않았지만, 그의 임기 동안에 피그스 만 침공, 쿠바 미사일 위기, 베를린 장벽, 우주 경쟁, 베트남 전쟁 간접 개입, 미국 민권 운동 등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서투른 명문가 도련님이라는 우려도 받았으나 역사가들은 케네디를 링컨, 루즈벨트, 워싱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정치경력
1946년 매사추세츠주 제11구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투신하였으며, 35세인 1952년에 같은 구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53년에 <타임 헤럴드>의 지적인 사진기자 '재클린 부비에'와 결혼했으며, 1957년에 <용기있는 사람들 Profiles in Courage>이라는 저서로 퓰리처상을 탔다.
1958년 상원의원으로 재선되었으며,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뉴 프런티어(New Frontier)'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민주당 후보로 출마,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을 누르고 승리하였다. 이로써 케네디는 1961년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가톨릭 신자로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이 되었다.
취임이후 젊은 대통령으로서의 재기와 웅변가적 기질을 무기삼이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자주 이용하였으며, 특히 텔레비전을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케네디뿐만 아니라 그의 지적이고 아름다운 부인 재클린 역시 인기가 높았다.
내정 면에서는 복지국가의 건설과 흑인 공민권의 확대 등을 추진했고, 외교 면에서는 동서냉전 완화에 노력했다.
당시 쿠바에서는 1959년 1월 카스트로에 의한 혁명정권이 수립되어 설탕을 중심으로 쿠바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상봉쇄로 미·소관계는 극도로 긴장상태에 빠져 핵전쟁의 위기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 위기에 즈음하여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에 미사일기지 철거를 요구했고, 흐루시초프의 양보로 핵전쟁의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이듬해인 1963년 미국, 영국, 소련은 부분적인 핵실험 금지조약(PTBT)에 조인하고, 지하 실험을 제외한 모든 핵실험을 금지했다.
암살과 그 이후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22일 유세지인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자동차 퍼레이드 중 전해병대원 '리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의 총탄에 사망하게 된다. 당시 이 장면은 TV로 생생하게 중계되었으며 전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암살자 오스왈드는 사건 이틀 뒤 구치소로 수감되기 위해 댈러스 경찰서에서 나오는 순간 나이트클럽의 경영자이자 연방수사국(FBI)의 정보원인 '잭 루비'라는 남자에게 살해되었다. 오스왈드 살해범 잭 루비 역시 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67년 석연찮은 죽음을 맞았다.
당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 대법원장 E.워렌을 위원장으로 하는 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회는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며 배후에는 아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오스왈드의 배후에 대해서는 비밀공작설, 마피아 개입설, 쿠바음모설, 소련음모설, 군산복합체 등 보수세력 음모설 등 수많이 음모설이 꼬리를 물었으며, 1976년 하원에 암살조사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워렌보고서의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1988년 미 법무부는 ""음모론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수사 종결을 선언했고, 잭 루비 역시 케네디의 추앙자로서 순수한 분노가 범행 동기였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 ABC방송이 케네디 암살 4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중 7명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암살이 음모의 결과이며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생긴 외모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과의 스캔들, 46세에 암살당한 젊은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죽음은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하나의 전설로 남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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