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외딴집 ―홍성운(1959~ )

yellowday 2013. 10. 16. 22:28

외딴집

 

누가 살아서 지붕에 고추를 말리시나
큰길이 뚫리기 전, 아는 이도 없었을
흉년 든
어느 해인가
그냥 밭에 눌러앉았을

 

요즘 들어 울담에는 애호박도 보인다
털다 만 깻단들이 마당에 수북한 날
“계세요?”
“누구 계세요?”
인사라도 하고 싶다

 

정작 반세기 동안 이웃 없이 살아서
말문이 닫혔다면 이 가을엔 여시라!
불임의 먹감나무가
해거리 끝에
땡감 달듯이

 

―홍성운(1959~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일러스트

시월 하늘이 푸르기 짝이 없다. 거기에 빨간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있어 한국의 가을은 더 눈부시다. 빨간 고추를 말리는 지붕이며 마당에서

착실히 익어가는 우리의 가을. 그렇게 순도 높은 햇볕과 바람과 정성으로 말리는 태양초는 말 그대로 한국의 진짜 맛이다.

도회지 아들딸들에게 보내주는 맵싸한 깊이를 지닌 고향의 참맛이다.

그러니 외딴집이라도 빨갛게 익은 고추를 말리는 지붕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쓸쓸하고 막막한 중에도 누군가에게는 잘 말린 고추를

보내주겠거니 하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러는 동안은 외딴집 지붕도 외롭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냥 인사라도 하고 싶은 날이면,

'털다 만 깻단'에서도 고소한 향이 한층 짙어져 가을 마당에 널리널리 퍼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