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절판된 소설

yellowday 2013. 10. 1. 15:28

입력 : 2013.09.30 03:02

'키 155㎝, 가슴둘레 78㎝, 몸무게 44㎏가량.' 1972년 최인호가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별들의 고향' 주인공 '경아'의 몸매다. 스물여섯 살 최인호는 아내를 떠올리며 경아를 묘사했다. "짝짝이 눈꺼풀을 갖고 있으며 알 밴 게처럼 통통한 몸매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소설 삽화에 나온 남자 주인공 얼굴도 최인호를 모델로 삼았다. 연재가 끝난 뒤 상·하권으로 낸 소설책은 10여년 동안 100만부쯤 팔렸다.

▶'별들의 고향' 발표 25년 뒤 최인호는 "쉰 살이 넘은 지금도 사람들이 내 이름을 들으면 '별들의 고향'을 떠올리는 모양"이라고 했다. 그는 "한때는 내 자신이었고 내 애인이었고, 이제는 누님처럼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경아"라고 했다. 얼마 전 최인호가 타계하자 신문들은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작가 최인호'라고 썼다. 작가의 분신(分身) '별들의 고향'을 다시 읽으려 했더니 서점에선 살 수가 없다. 절판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만물상 일러스트

▶조해일이 1976년 낸 장편 '겨울 여자'도 7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었다. 주인공 이화는 '여러 남자와 사랑을 나눴어도 한겨울의 눈처럼 순결한 성처녀(聖處女)' 이미지로 오래 남아 있다. 이 책도 절판된 지 10여년이 지났다. 박영한이 1978년 발표한 소설 '머나먼 쏭바강'도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였다. 2006년 작가가 병으로 세상을 뜬 뒤 몇 년 지나지 않아 서점에서 사라졌다.

▶독자 취향이 자꾸 변하다 보니 베스트셀러라도 출판 시장에서 퇴출당하기 쉽다. '별들의 고향'을 비롯한 70년대 소설도 독자가 외면한 탓에 절판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소설들엔 산업화 시대의 세태 변화와 월남전 세대의 아픔이 잘 담겼다. 나름대로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대중소설이다. 최인호·조해일·박영한은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품도 여럿 남겼다.

▶1782년에 나온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는 통속소설의 전형이었다. 귀족들의 자유분방한 연애를 다뤄 사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요즘엔 18세기 상류층 풍속도를 가장 잘 그린 고전으로 대접받는다. 프랑스 현대소설 중에 화제작은 인기가 떨어져도 문고본으로 살아남는다. 웬만큼 팔린 신간은 1~2년 뒤 포켓북으로 바뀌어 싼값에 더 많이 더 오래 나간다. 우리 서점에선 수많은 독자가 제목을 알아도 살 수 없는 책이 적지 않다. 출판인들이 문고본 제작을 외면한 탓이 크다. '별들의 고향' 절판은 우리 출판계의 맹점을 허탈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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