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0.04 03:05
지금도 소를 몰아 농사짓는 마을이 있다. 경남 남해 남쪽 바닷가 다랭이마을이다. 다랭이는 비탈에 만든 계단식 논 다랑이의 사투리다. 45도 경사진 산기슭 108층 계단에 680개 논배미가 들어섰다. 한 뼘 땅이라도 더 갈아보려고 석축 쌓고 고랑 일궜다. 한 배미가 세 평에서 서른 평. 농기계가 못 들어가니 소 힘을 빌려야 한다. "이러 이러(앞으로)" "워워(멈춰)" "어디에(그쪽 아니다)"…. 주인 말 알아듣는 소가 신통하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릴 적 충남 예산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소 등에 올라타 개울 건너고 들을 누볐다. 밤에 무서운 꿈을 꾸다 깨면 방 옆 외양간에서 소가 푸우 하고 몰아쉬는 숨소리에 안심하곤 했다. 사촌형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소를 팔기 전날 밤 외양간 앞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버지였다. 이튿날 대문을 나서며 소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윤대녕에게 소는 식구였기에 "소를 먹거리로 이야기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소설가 윤대녕은 어릴 적 충남 예산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소 등에 올라타 개울 건너고 들을 누볐다. 밤에 무서운 꿈을 꾸다 깨면 방 옆 외양간에서 소가 푸우 하고 몰아쉬는 숨소리에 안심하곤 했다. 사촌형 대학 등록금을 대느라 소를 팔기 전날 밤 외양간 앞에서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큰아버지였다. 이튿날 대문을 나서며 소는 자꾸 뒤를 돌아봤다. 윤대녕에게 소는 식구였기에 "소를 먹거리로 이야기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경북 봉화 산골 농부 최원균 할아버지에게 소는 친구였다. 암소 누렁이는 여느 소의 수명 열다섯 살을 훨씬 넘어 마흔까지 살며 밭을 갈았다. 다리 불편한 주인 싣고서 달구지를 끌었다. 귀 어두운 주인도 누렁이의 워낭 소리만은 금세 알아차렸다. 누렁이에게 해롭다며 논에 농약도 치지 않았다. 쇠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2008년 누렁이가 죽어 이별하기까지 주인과 소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워낭 소리'의 주인공이다.
▶여든다섯 살 최원균 할아버지가 엊그제 세상을 떴다. 할아버지는 작년 말 폐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논둑 손보고 풀 베며 들일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집 아래 봉분 올려 묻어준 누렁이 무덤에서 눈시울 붉히며 한숨짓곤 했다. 가족들은 할아버지 뜻에 따라 누렁이 무덤 가까이 모신다고 한다. 누렁이 목에 달려 있던 워낭도 함께 묻어준다. 눈망울에 늘 눈물 같은 것이 끼어 있던 영화 속 누렁이가 생각난다. 소가 먹을거리로만 의미를 갖는 세상에서 죽어서도 이어지는 사람과 소의 우정에 따스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