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9.13 03:22
'미국의 개선(凱旋)'이라는 미국 고교 역사교과서를 본 적이 있다. 두툼한 책에 실린 풍부한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사건·인물 사진만 해도 570장에 이르렀다.
교과서 맨 앞 '이 책을 읽는 학생들에게'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진을 주의 깊게 관찰하라. 그리고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라. 인물사진이 있으면 그들이 역사상
어떤 역할을 했는가 헤아려보라. 그들의 표정, 옷차림에까지 신경을 쓰라. 모든 그림·사진은 여러분이 캐낼 무한한 정보의 광맥(鑛脈)을 담고 있다."
▶교과서엔 2차대전 후 일본에 진주한 미군 병사가 게이샤와 춤추는 사진까지 실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행가 가사, 만화·잡지 표지, 영화 포스터들이
미국 대중문화 흐름을 한눈에 보여줬다. 프랑스 역사교과서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참고 문헌이다. 한 고교 현대사 교과서는 20세기 초 미국을 다룬 대목에서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쓴 책, 월스트리트의 비리를 파헤친 신문 기사,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배달된 시민의 민원(民願) 편지 내용까지 소개하고 있다.
▶선진국 역사교과서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쉽게 잘 읽히는 가독성(可讀性·readability)이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도 학생들이 흥미를 잃으면 소용없다.
교과서 본문 문장은 물론 거기 실린 자료 하나하나도 독자인 학생을 붙잡기 위해 오래 고심한 것들이다. 미국 고교 역사교과서 편찬에는 영문학자가 반드시
참가한다고 한다. 그들은 교과서 문장에 비문(非文)은 없는지, 어휘들이 고교 1학년이 이해할 만한 수준인지 꼼꼼히 따진다.
▶국사편찬위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역사 교육의 좌편향을 바로잡겠다는 교과서가 선보이기 무섭게
좌파 성향 학자와 언론들은 "친일·독재를 미화했다"고 몰아쳤다. "오류·왜곡·표절투성이"라고 했다. 그러자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그제
"역사교과서 채택 시한을 11월로 늦춰,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역사교과서 여덟 종을 그때까지 수정·보완토록 하겠다"고 했다.
▶서 장관은 "교학사 교과서 같은 오류가 다른 출판사 교과서들에서도 발견됐다"고 했다. 역사교과서가 정확하고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 더해 학생과 교사에게 친절해야 한다. 두 달 동안 완전히 새로 쓴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야 채택률도 높아질 것이다. 역사교과서 필자와 출판사들은
미국의 중·고교 역사교과서들이 왜 '국민교양서' 대접을 받는지 살펴볼 일이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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