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시조 - 거인의 자리 / 김삼환(1958~)

yellowday 2013. 9. 7. 19:05

 

입력 : 2013.09.05 03:02

거인의 자리

강물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 깊은 상처 아물어
생살 돋을 때까지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있기 때문이지

 

바위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속으로 울음 울어
불길 잡힐 때까지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지

 

―김삼환(1958~)


	[가슴으로 읽는 시조] 거인의 자리
/유재일
아침저녁 서늘바람만도 고맙기 그지없다. 올여름 더위가 그만큼 무서웠던 게다. 그런 여름은 난폭한 거인이었을까. 움푹 패고 헐린 흔적들로 도처가 몸살이다. 강도 높은 태양과 난폭해진 큰비는 아스팔트까지 녹이고 갔다. 더 겸허하지 않으면 갈수록 세지는 기후변화 위력에 우리는 계속 휘둘릴 것이다. 강이고 산이고 도시고 몸살이 심해질 것이다.

그래도 강은 아직 흙탕 쓰레기를 다 받아 안고 흐른다. '제 속에 산 그림자를 껴안고' 가는 깊고 너른 품. 오랫동안 큰 산을 품고 흘렀으니 무엇인들 못 품으랴. 말없이 한결같기로는 바위도 마찬가지. 긴 시간을 견뎌온 풍모가 똑 무념무상의 거인 같다. 그게 '거인이 앉았던 자리에 가득한 고요 때문'이라면, 일희일비(一喜一悲) 않는 힘도 그런 고요의 깊이에서 나올 것. 유독 반가운 이 가을도 여름의 상처들을 잘 보듬어주길, 고요한 거인의 손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