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지의 난정서
왕희지(王羲之, 303년~361년)는 중국 진나라의 서예가이다. 왕우군이라고도 한다.
서예에 뛰어나 ‘서성’(書聖)이라고 일컬어진다. 처음에는 서진의 여류 서예가인 위 부인에게 글씨를 배웠고,
후에 한나라·위나라의 비문을 연구하여 해서·행서·초서의 서체를 완성하였다. 아들 왕헌지도 서예가이다.
작품으로 〈난정서〉, 〈상란첩〉, 〈황정경〉, 〈악의론〉 등이 있다.
왕희지 yellowday 옮김
중국 저장성 사오싱(紹興) 교외에 난정(蘭亭)이라는 유적이 있다. 왕희지(王羲之)가 서예사 최고 걸작 '난정서(序)'를 쓴 곳이다.
기념관에는 중국 역대 내로라하는 글씨 대가들이 왕희지를 흉내 내 쓴 제2, 제3의 '난정서'들이 수십 점 걸려 있다.
안진경 우세남 소동파 구양순 조맹부 정판교…. 그러나 정작 왕희지가 쓴 '난정서'는 없다.
회계산 산음 난정에서
왕희지는 354년 3월 친구·후배 문인 마흔한 명과 봄맞이 잔치를 열었다.
경주 포석정처럼 흐르는 물에 술잔 띄우고 누군가의 앞에 잔이 머물면 시를 한 수 짓게 하는 자리였다.
잔치의 모습들을 글로 옮겨 쓴 걸작이 '난정서'이다.
* 술이 거나하게 오른후에 썼다는 소문이...후문에 의하면 술이 깨고난후
아무리 다시 써도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