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다 야스나리 (川端康成) 왜 자살을 했을까?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1899-1972)는 왜 1972년 의문의 자살을 했을까?
동경대학 출신이고 일본에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소설가가 무엇 때문에
자실을 했을까? 오랜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어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했다.
2006년 2월 19일(일)에 저와 집사람 김옥수 동행인 니이가타 대학 후지이시 타까요( 藤石貴代
FUJIISHI, Takayo)교수(한국문학 전공)와 월후탕택역(越後湯澤驛)에서 에서 가까운
설국문학관(雪國文學館)을 관람했다. 비로서 그곳에서 명확한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여성문제, 집필문제가 아니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와바다 야스나리는 몸이
쇠약해지고 추해지니까 그것이 한탄스려워서 자살했다고 한다.
평생 동안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한 탐미주의이다.
1972년 4월 16일
가와바다 야스나리 자살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雪國)였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얀 색이었다.”
일본의 서정주의 작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대표 중편소설 <설국>은 도입부분부터 허무주의적 서정이 물씬 묻어난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소품은 눈이다. 눈으로 뒤덮인 니가타의 한 온천마을을 무대로 한 이 작품이 주제가 무엇인지도 뚜렷하지 않은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바로 눈 때문이다. 상황마다 변화하는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삼각관계의 감정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 꿈틀거리며 쓸쓸한 사랑과 삶이 가지는 슬픈 숙명을 전달해 준다.
가와바다는 이 소설을 10년에 걸쳐 썼다. 그는 1968년 이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동양인으로서는 인도의 타고르에 이어 두번째였다.
1899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누나, 조부모를 모두 어린 시절에 잃은 불행한 개인사를 갖고 있다. 그가 유년시절 겪었던 슬픔과 고독, 허무감이 그의 성격은 물론 작품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죽기 전까지 발표한 100여편의 작품들은 모두 사물에 대한 비관과 고독으로 점철돼 있다. 그러나 그는 생명체가 가진 숙명과도 같은 슬픔을 치열한 서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피폐해진 전후(戰後) 일본의 사회 분위기도 그의 세계관과 비슷했다. 태평양전쟁에서 참혹하게 패한 군국주의 국가 일본은 모든 것이 파괴되고 민족적 자존심마저 미 군정에 의해 무너졌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같은 고단한 현실에서 벗어나 탐닉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 그가 묘사한 ‘지방의 경계에 있는 긴 터널’은 그를 비롯해 삶의 지향점을 잃은 일본인들의 일상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그 터널 밖에 있는 순백의 눈세계를 탐닉하길 열망했다.
근대 일본 문학사에 불멸의 족적을 남긴 그는 1972년 4월16일 작업실에서 가스관을 입에 문 채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제자인 극우적 성향의 탐미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에서 할복자살을 한 것이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하지만 그가 돌연 스스로 생을 저버린 행위는 긴 터널 끝에 있는 극단적 미학의 실체를 작가로서 최상의 영예를 누린 뒤 비로소 발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신모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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