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106] '눈에는 눈, 이에는 이'

yellowday 2013. 7. 25. 10:58

 

입력 : 2013.07.25 03:04
	기원전 1780년경, 현무암, 부조(사진) 높이 71㎝, 전체 높이 2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기원전 1780년경, 현무암, 부조(사진) 높이 71㎝, 전체 높이 2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흔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법의 원형이자 가장 오래된 성문법의 하나인 함무라비 법전은 높이 2m가 넘는 검은 현무암 비석에 새겨진 문서다. 함무라비(Hammurabi·재위 기원전 약 1792~ 1750년)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산재하던 크고 작은 도시 국가들 중 하나인 바빌로니아 왕국의 왕이었다. 그는 주변국을 정복하고 바빌로니아의 최대 판도를 이루었지만, 수천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되는 이유는 법을 세운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비석 상단에 새겨져 있다. 왼쪽이 함무라비고, 그 앞의 권좌에는 태양의 신이자 정의의 신인 샤마시가 앉아 있다. 신은 권좌에서 일어선다면, 함무라비의 두 배쯤 될 거대한 존재일 뿐 아니라, 양 어깨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권능을 상징하는 황소의 뿔 네 쌍이 층을 이룬 높은 관을 쓰고 있다. 함무라비는 한 손을 배에 붙이고, 다른 손은 조심스레 올려 신에게 예의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전지전능한 신을 직접 마주 대하고 있다니, 함무라비 또한 초인간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샤마시는 함무라비에게 길이를 재는 자와 밧줄을 건네준다. 이 둘은 건설과 측량을 위한 도구이니, 신이 곧 왕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사회 정의를 세우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시나이산에서 신에게 십계명을 직접 받았다는 히브리인들의 지도자, 모세가 떠오를 것이다. 왕이 곧 신이었던 동시대의 이집트 문명에 비해, 메소포타미아에서 왕은 늘 신의 뜻을 대신 집행하는 겸손한 대리인으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