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스크랩] 안도현 시 모음

yellowday 2013. 7. 9. 06:08

*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호박꽃  

호호호호 호박꽃

호박꽃을 따버리면

애애애애 애호박

애호박이 안 열려

호호호호 호박전

호박전을 못 먹어

 

* 감자꽃
흰 꽃잎이 작다고
톡 쏘는 향기가 없다고
얕보지는 마세요

그날이 올 때 까지는
땅 속에다
꼭꼭
숨겨둔 게 있다고요

우리한테도
숨겨둔
주먹이 있다고요

 

* 호박꽃에 취하여
호박 넝쿨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더니 
거기 호박꽃이 피었더라 
그 호박꽃 속으로 난 길을 걸어 들어갔더니 
호박밭에 쪼그리고 앉은 내가 보이더라 

 

* 사랑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

 

* 사랑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 짓는 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나로 하여 그이가 눈물 짓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못 견딜 두려움으로
스스로 가슴을 쥐어뜯지 않게 하소서
사랑으로 하여 내가 쓰러져 죽는 날에도
그이를 진정 사랑했었노라 말하지 않게 하소서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

 

*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 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

 

* 정든 세월에게  
홍매화 꽃망울 달기 시작하는데 싸락눈이 내렸다
나는 이제 너의 상처를 감싸주지 않을 거야
너 아픈 동안, 얼마나 고통스럽냐고
너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백지 위에다 쓰지 않을 거야
매화나무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나뭇가지 속이 뜨거워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너를 위하여 내가 흘릴 눈물이 있다고

말하지 않을 거야 쿨룩쿨룩, 기침을 하며
싸락눈이 봄날을 건너가고 있었다
 

 

* 간격  
숲을 멀리 바라보고 있을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나무 사이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울울창창 숲을 이룬다는 것을
산불이 휠쓸고 지나간
숲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 분홍 지우개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 첫사랑
그 여름 내내 장마가 다 끝나도록 나는
봉숭아 잎사귀 뒤에 붙어 있던
한 마리 무당벌레였습니다


비 그친 뒤에, 꼭
한번 날아가보려고 바둥댔지만
그때는 뜰 안 가득 성큼
가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코 밑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돋기 시작하였습니다

 

* 먼 산

저물녘

그대가 나를 부르면

나는 부를수록 멀어지는 서쪽 산이 되지요

그대가 나를 감싸는 노을로 오리라 믿으면서요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숨기고

그대의 먼 산 되지요

 

가을엽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

 

* 비 그친 뒤    
담장 밑 텃밭 상추 푸른 냄새가 
3층 교실까지 올라온다 
딱정벌레같이 엎드려 사는 슬라브지붕집 빨랫줄에 
누군가 눈부시게 기저귀를 내다 넌다 
저 아기도 자라면 가방 들고 딸랑딸랑 이리로 걸어올 것이다  
   
   

* 산당화

산당화야 
산당화야 
교장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나고, 너도 
숙직실 처마 밑에 나와 섰구나  
할 일이 많아서 
그리 많은 꽃송이를 달고 
몸살난 듯 꽃잎들이 
뜨겁도록 붉구나

    
* 지평선 너머  
힘겨워도 기여이 기여이 굴뚝이 저녁연기를 밀어올리는  
지평선 너머 
먼 개 짖는 소리 
컹컹 들판을 건너오는 것은 
아침에는 어김없이 일어나 개밥 말아줄 사람이 
지평선 너머 있다는 말이구나 
그 마을로 별똥별이 여럿 뛰어내리다 숨는 밤

 
* 가을 햇볕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고추장도 되고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 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 지는 것

아무 이유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 안도현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 석류

마당가에 석류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서

나도 지구 위에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노라,

나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몰랐지요

그때부터 내 몸은 근지럽기 시작했는데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석류나무도 제 몸을 마구 긁는 것이었어요

새 잎을 피워 올리면서도 참지 못하고 몸을 긁는 통에

결국 주홍빛 진물까지 흐르더군요

그래요, 석류꽃이 피어났던 거죠

나는 새털구름의 마룻장을 뜯어다가 여름내 마당에 평상을 깔고

눈알이 붉게 물들도록 실컷 꽃을 바라보았지요

나는 정말 좋아서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찾아왔어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입을 딱, 벌리고 말이에요

가을도, 도대체 참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

* 안도현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 토란잎

빗방울
토란잎의 귀고리

 
이것저것 자꾸
큰 것도 작은 것도 달아보지만
혼자 다 갖지는 않는
참으로
단순하게
단순하게 사는 토란잎

빗소리만큼만 살고
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 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차지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다

귀고리
없으면 그냥 산다는
토란잎

 

* 애기똥풀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아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

출처 : 숲속의 작은 옹달샘
글쓴이 : 효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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