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스크랩] 안도현 시 모음 2

yellowday 2013. 7. 9. 06:06

*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 길
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대라고 부를 사람에게
그 길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끝없는 길을 

 

* 봄이 올 때까지는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 사랑한다는 것 

길가에 민들레 한송이 피어나면

꽃잎으로 온 하늘을 다 받치고 살듯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오직 한 사람을 사무치게 사랑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비로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차고 맑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한다는 것은

그대는 나의 세상을

나는 그대의 세상을

함께 짊어지고

새벽을 향해 걸어가겠다는 것입니다 * 

 

* 가난한다는 것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 그립다는 것
그립다는 것은
가슴에 이미
상처가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나날이 살이 썩어간다는 뜻입니다

 

*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 너와 나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 적막

풀숲에 호박이 눌러앉아 살다 간 자리같이
그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든 물기같이
거기에다 제 얼굴을 가만히 대보는 낮달과도 같이


* 대숲이 푸른 이유
대숲의 푸른 머리카락을 빗질하려고
바람이 대숲으로 들어가네
댓잎들이 배때기를 일제히 뒤집은 채
바람을 밀어내려고 버티네
이것 좀 봐 화가 잔뜩 난 바람이
한 손으로 대숲의 머리채 휘어잡고
한 손으로 대숲의 종아리 후려치네
대숲이 왜 저렇게 푸르냐 하면
아으, 한평생 서서 매맞은 탓이라네

 

* 제비꽃  

제비꽃 한 포기

오순도순 돋아난 걸 보고

들길 가던 유경이가 무슨 꽃이냐고 묻는다

나는 제비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또 오랑캐꽃으로도 부른다고


한참 동안 그 오롯한 것을 들여다보면서

유경이나 나는 들녘에서

둘이서 이 세상을 반반씩 다 알았다


햇볕도 관심 있다는 듯 우리를 오래 비추었다

 

* 제비꽃 편지  

제비꽃이 하도 예쁘게 피었기에

화분에 담아 한번 키워보려고 했지요

뿌리가 아프지 않게 조심조심 삽으로 떠다가

물도 듬뿍 주고 창틀에 놓았지요

그 가는 허리로 버티기 힘들었을까요

세상이 무거워서요

한 시간이 못되어 시드는 것이었지요

나는 금세 실망하고 말았지만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없었어요

시들 때는 시들 줄 알아야 꽃인 것이지요

그래서

좋다

시들어라, 하고 그대로 두었지요

 

* 천진난만  

눈이 내려오신다고

늙은 소나무 한 그루

팔 벌리고 밤새 눈 받다가

팔 하나 뚜둑, 부러졌다


이까짓 것쯤이야

눈이 내려오시는데, 뭘

이까짓 것쯤이야

 

별빛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해라

 

* 겨울 편지  

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

부르르 몸을 흔듭니다


눈물겹습니다


머지않아

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

사랑은 이렇게 더디게 오는 것이겠지요

 

* 가을  

사과가 익었다고

콕콕 쪼아대더니


부리 끝이 시다고

깍깍대는 때까치

 

* 고추밭  

어머니의 고추밭에 나가면

연한 손에 매운 물든다 저리 가 있거라

나는 비탈진 황토밭 근방에서

맴맴 고추잠자리였다

어머니 어깨 위에 내리는

글썽거리는 햇살이었다

아들 넷만 나란히 보기 좋게 키워내셨으니

짓무른 벌레 먹은 구멍 뚫린 고추 보고

누가 도현네 올 고추 농사 잘 안되었네요 해도

가을에 가봐야 알지요 하시는

우리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

 

* 갈등  

바람은 불지요

길을 열자고 같이 나섰던 동무들은

얼음장 꺼지듯 가라앉아 소식 없지요

그대 보고 싶은 마음 언덕배기에 빈 터에 쑥 돋듯 하지요

저 연록 물오른 바람 난 실버들 가지처럼

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지요

나도 내 존재를 어쩌지 못해서요

이래서는 안돼, 안돼 하면서

내 몸은 자꾸 꼬여가지요

 

* 귀뚜라미  

귀뚜라미야, 한밤내 생떼 생떼 쓰지 마라

일 주일만 기다리면 수업료 준대도 그러느냐

 

* 땅

내게 땅이 있다면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때가 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라빛 나팔 소리가

내 귀를 즐겁게 하리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내게 땅이 있다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 나뭇잎 하나  

나뭇잎 하나가

벌레 먹어 혈관이 다 보이는 나뭇잎 하나가

물속이 얼마나 깊은지 들여다보려고

저 혼자 물위에 내려앉는다


나뭇잎 하나를

이렇게 오도마니 혼자서 오래오래 바라볼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 낙숫물

빗방울하고 어울리고 싶어요
깨금발로 깨금발로 놀고 싶어요
세상의 어깨도 통통 두르려주고 싶어요

 

* 무말랭이
외할머니가 살점을 납작납작 하게 썰어 말리고 있다
내 입에 넣어 씹기 좋을만큼 가지런해서 슬프다
가을볕이 살점 위에 감미료를 편편(片片) 뿌리고 있다

몸에 남은 물기를 꼭 짜버리고
이레 만에 외할머니는 꼬들고들해졌다

그해 가을 나는 외갓집 고방에서 귀뚜라미가 되어 글썽글썽 울었다

 

* 민어회 

집에서 멀리 나가 혼자 어둑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은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밤 등대처럼 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곧장 목포 유달산 밑으로 가서 영란횟집 계산대 앞에 민어 한 마리로 누워 있겠다

벗겨 손질한 껍질 옆에다 소금 종지를 두고 내장을 냄비에 끓여 미나리도 반드시 몇 가닥 얹겠다

혹여 전화하지 마라
올 테면 연분홍 살을 뜨는 칼처럼 오라

바다의 무릉도원에서 딴 복사꽃을 살의 갈피마다 켜켜이 끼워둘 것이니

때로 살다가 저며내고 발라내야 할 것들 때문에 뼈는 아리지 그래도 오로지 뼈만이 폭풍 속에 화석을 새겨넣지

 
그러므로 당신은 울지 마라 소주병처럼 속을 다 비워낸 뒤에야 바닷가 언덕에 서서 호이호이 울어라 *

 
*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국물이 끓어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
 
* 병어회와 깻잎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치며 달려왔다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 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
 

* 꽃 지는 날

뜰 안에 석류꽃이 마구 뚝뚝 지는 날, 떨어진 꽃이 아까워 몇 개 주워 들었더니 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지 지는 꽃 때문에 석류 알이 굵어지는 거 모르나? 어머니, 어머니, 지는 꽃 어머니가 나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고, 그나저나 너는 돈 벌 생각은 않고 꽃 지는 거만 하루종일 바라보나? 어머니, 꽃 지는 날은 꽃 바라보는 게 돈 버는 거지요

석류 알만한 불알 두쪽 차고앉아 나, 건들거리고 

출처 : 숲속의 작은 옹달샘
글쓴이 : 효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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