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회화사에서 안견 이래 최고의 화가를 꼽자면 단연코 학포(學圃) 이상좌(李上佐)이다. 어숙권(魚叔權)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 의하면 그는 본래 어느 선비의 가노(家奴)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나 중종의 특명으로 도화서(圖畵署) 화원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좌는 특히 인물과 초상에 능하여 1543년엔 예조에서 한나라 때 편찬된 '열녀전(烈女傳)'을 국역할 때 그 삽화를 그렸으며, 1545년엔 돌아가신 중종의 초상을 석경(石璟)과 함께 추모(追模)하여 그렸다. 1546년에는 공신들의 초상을 그린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정식 공신 등수 밖의 공신) 칭호를 받았으며 전하기로는 기녀 상림춘(上林春)의 요청으로 산수인물도를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의 유작은 모두가 전칭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도화서에 보관되었었다는 '화원별집(畵苑別集)'(국박 소장)에 실린 그의 '낮잠'이라는 소품, 일본에 전하는 '월하방우도(月下訪友圖)' 등 그의 전칭 대작들, 그리고 미수 허목이 1671년에 발문을 쓰면서 이상좌의 그림이라고 증언한 '불화첩'(보물 593호·리움 소장) 등을 보면 그의 명성에 값한다.
그런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송하보월도(松下步月圖·사진)'는 남송의 대가인 마원(馬遠)풍의 산수화로 가히 명화라 할 만하다. 벼랑 위에서 자란 멋들어진 소나무 아래로 난 길을 도포를 입은 한 선비가 동자와 더불어 거닐고 있다. 선비의 수염과 옷자락, 소나무 가지와 가지에 매달린 넝쿨들이 같은 방향으로 역풍에 나부끼고 있어 화면상에는 강한 동감이 일어나는데 화면 맨 위쪽, 소나무 너머 저 멀리에 둥근 달이 떠 있다. 여백을 살린 대각선 구도로 대단히 시정적(詩情的)인 작품이다.
도서낙관을 분명히 남기지 않는 당시의 풍조 때문에 비록 전칭으로 불리지만 조선 전기에 '송하보월도' 같은 명화가 전한다는 것은 한국회화사의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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