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 방성대곡 / 위암 장지연
해석
지난번 이등(伊藤) 후작[1]이 내한했을 때에 어리석은 우리 인민들은 서로 말하기를,
"후작은 평소 동양삼국의 정족(鼎足) 안녕을 주선하겠노라 자처하던 사람인지라,
오늘 내한함이 필경 우리나라의 독립을 공고히 부식케 할 방책을 권고키 위한 것이리라."하여
인천항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 관민상하가 환영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 일이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많도다. 천만 꿈밖에도 다섯 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뜻이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았음은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 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자신의 출세와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거리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백성들을 남의 노예가 되게 하였으니,
저 개 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으나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며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 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히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이등: 이토오 히로부미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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