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12] 아르카디아의 목동들

yellowday 2013. 1. 18. 22:57

아르카디아는 고대로부터 서구인들이 동경하던 지상낙원으로 그리스의 실제 지명이기도 하다. 서양 낙원의 면면도 동양의 무릉도원과 마찬가지로 소박하다. 온화한 자연 풍광 아래서 한가로이 양을 치는 목가적인 삶이 지속된다. 세속의 욕심으로부터만 도피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미술의 고전주의를 확립한 17세기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아르카디아의 목동들'〈사진〉은 아르카디아에서조차도 인간의 삶은 유한함을 되짚는다.

어느 날, 아르카디아의 세 목동이 무덤과 맞닥뜨린다. 묘비에는 짧지만 큰 충격을 주는 글귀가 적혀 있다. "Et in Arcadia Ego."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는 이 말은 죽음의 경고다. 비극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세 목동들의 반응은 조금씩 다르다. 제일 왼쪽의 목동은 묘비에 기대서서 깊은 사색에 잠겼다. 가운데 목동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손가락으로 묘비명을 되짚어보지만, 무덤에 깃든 검은 그림자는 이미 죽음의 전조다. 오른쪽에 선 목동은 우수에 잠긴 눈으로 뒤에 선 여인을 돌아보며 묻는다. "이것이 진실인가?"

흔들리지 않고 서서 목동의 어깨에 손을 얹은 여인은 '역사'의 알레고리다. 엄숙한 그녀의 얼굴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 명료하다. 어떤 쾌락을 얼마나 누릴지라도 인간은 반드시 죽음으로 스러질 것이며, 그 뒤에는 냉엄한 역사의 심판이 기다린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지적인 화가 푸생이 전하는 삶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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