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78] 라 투르의 '카드 사기꾼'

yellowday 2013. 1. 5. 09:42

르네상스 이후 초상화, 역사화, 종교화 등이 주종을 이루던 서양 회화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장면들이 그려지기 시작하는 것은 17세기부터이다. 일상의 모습 가운데 속임수나 사기를 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가 그린 '카드 사기꾼'(약 1630년)은 얼핏 보면 여러 명이 둘러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평범한 장면으로 보인다.

'카드 사기꾼'.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의 얼굴, 눈짓, 행동은 여간 수상한 것이 아니다. 얼굴이 그늘에 가려진 맨 왼쪽의 남자는 자신의 벨트 뒤에 숨겨두었던 에이스 카드를 빼내고 있다. 중앙에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여성은 와인 잔을 가져온 소녀와 눈짓을 하면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순진한 청년을 술에 취하게 만들 궁리를 하고 있다. 요란한 깃털모자와 보석으로 치장된 옷을 입은 이 부잣집 도령은 곧 큰돈을 잃게 될 것도 모르고 카드를 고르고 있다. 그런데 사기의 현장을 포착한 것 이상으로 이 그림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벨벳의 의상, 깃털이나 멋을 낸 모자 장식, 그리고 어두운 배경 속에서 강하게 부각되는 흰 피부의 얼굴 등에서 느껴지는 세련된 감각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는 20세기 중반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였다. 그에 대해서는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로렝 지방에서 태어난 출생기록, 결혼기록, 그리고 그가 기르던 사냥개가 농작물을 망쳤다는 시민들의 진정서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색채의 풍부함, 선과 형태의 관계에서 시적이며 절묘한 구성, 특히 촛불광선을 이용한 심오한 종교적 작품 등으로 미루어 그가 파리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안목을 높일 기회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루이 13세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음이 알려지면서 그가 당대에는 꽤 유명한 화가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라 투르처럼 역사 속에 파묻혀 세상에 알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미술가들은 아직도 많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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