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서양의 화가들에게 일본 미술은 새로운 관심거리였다. 1854년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유럽에 일본 공예품들이 대거 소개되었고, 그 섬세한 표현과 뛰어난 기술은 곧 화랑가뿐 아니라 백화점에서도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평론가 필립 뷔르티는 이러한 열기에 '자포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화가들은 에도시대의 채색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畵)에 매료되었다. 그 시작은 화가 브라크몽이 1856년에 일본 수출 도자기를 싸고 있는 호쿠사이(北齊)의 목판화를 발견하면서였다. 그 목판화들은 주로 게이샤나 연극인, 또는 서민들의 일상생활 장면을 그렸는데 강렬하고 평면적인 색채, 단순화된 윤곽선, 그리고 특이한 시각은 화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휘슬러·반 고흐·마네·모네·드가와 같은 당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생 테오와 함께 400여점의 우키요에를 수집했던 반 고흐는 히로시게(��重)의 목판화를 그대로 모사한 그림에서 한문을 옮기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양에서 일본 미술이 붐을 일으키고 있을 때 일본에서도 서양 미술 작품이 수집되었다. 19세기 말에 서양회화를 소장했던 인물 중에는 외국여행의 기회가 많았던 고위직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토 히로부미도 그 중의 하나였다. 또한 서양미술관 설립을 꿈꾸고 미술품을 수집한 대표적인 인물은 가와사키 조선소의 사장이었던 마쓰가다 고지로였다.
그는 제1차대전 동안 선박 제조의 특수경기를 바탕으로 이룬 재력으로 유럽에서 무려 2000여점의 작품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 일본으로 들여오기 전, 2차대전이 나면서 파리의 로댕 미술관에 맡겨두었던 그의 소장품들은 적국 재산으로 몰수당했고 런던에 있던 300점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 나중에 프랑스 정부가 작품들을 반환하기는 하였지만 몇몇 유명한 작품은 결국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도쿄 우에노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이 바로 마쓰가다의 소장품을 기반으로 창설된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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