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1.03 22:58
-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이수스의 전투'… 1529년, 목판에 유채, 158.4×120.3㎝, 뮌헨 알테피나코텍 소장.
그의 '이수스의 전투'는 풍경을 성화(聖畵)나 역사화의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징적 의미를 가진 존재로
격상시켰던 알트도르퍼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은 바이에른 공국의 영주였던 빌헬름 4세가 주문한 것으로
당시 레겐스부르크의 시의원이기도 했던 알트도르퍼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시장직을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이수스는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를 물리친 격전의 현장이다. 하지만 빌헬름 4세는
고대의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기보다는 자기 당대에 서유럽 국가들이 베니스를 위협하던 오스만 제국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림에 등장한 병사들은 모두 16세기 스타일이다. 오른편 알렉산더 진영의 병사들은 유럽식
갑옷으로 무장했고, 왼편의 페르시아 병사들은 오스만의 복식(服飾)을 닮은 붉은 외투에 하얀 터번을 썼다. 그
한가운데에 백마부대를 이끌고 긴 창을 앞세워 전진하는 알렉산더와 그에게 바짝 쫓기며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는
다리우스의 전차(戰車)가 있다. 퇴각하는 페르시아 군대의 머리 위로 어둠에 잠긴 초승달이 흐릿하게 빛난다.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 즉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제국이었고 오스만을 비롯한 이슬람 국가의 상징이 바로 초승달인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진짜 주인공은 마치 지구 밖의 위성에서 지중해를 내려다본 것 같은 장엄한 풍경이다.
왼쪽부터 시나이반도, 홍해, 나일강 하류까지 이어진 광대한 대지와 그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 아래서는
승리를 거둔 알렉산더 대왕의 백만 대군도 그저 깨알같이 소소하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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