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있던 반 고흐가 화상(畵商)을 하는 동생 테오를 찾아 파리로 온 것은 1886년이었다. 같은 해 그는 이곳에서 5세 연상인 고갱을 만났다. 증권 브로커로 일하다가 35세에 화가가 된 고갱은 인상주의를 벗어나려는 젊은 화가들의 리더 격이었다. 얼마 후 반 고흐는 아를로 떠나면서 고갱을 초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동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기질 차이도 있었지만 미술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갱은 숙련된 소묘 화가인 앵그르와 드가를 좋아했고, 반 고흐는 고갱이 싫어하는 농민 화가 밀레를 좋아했다. 고갱은 구상을 미리 하고 기억과 상상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했지만, 반 고흐는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의 물리적 세계와의 감정적 교류에서 영감을 받는 화가였다. 이런 차이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귓불을 자르는 반 고흐의 첫 번째 발작을 촉발했던 것이다.
고갱과 같이 지낼 때 반 고흐는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한쌍의 그림으로 그렸다. 반 고흐 자신의 의자에는 그가 늘 애용하던 서민적인 파이프가 놓여 있고, 고갱의 의자에는 지성과 상상력을 상징하는 책과 촛불이 있다. 자신의 의자는 거친 직선을 교차시켜 투박하게 묘사한 반면, 고갱의 의자는 장식적인 곡선과 풍부한 색채로 표현했다. 의자 주인의 존재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이 그림들은 단순한 정물화를 넘어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 ▲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고갱의 의자'(왼쪽) 와‘빈센트의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