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백자달항아리'전에는 국보, 보물로 지정된 7점과 함께 대영박물관과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소장품도 찬조 출품되었다. 동양도자미술관의 달항아리<사진>는 본래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관음원(觀音院)의 주지였던 가이운(海雲)이라는 스님이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이 스님은 항아리를 좋아하여 '항아리 법사(壺法師)'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관음원 응접실 가장 좋은 자리를 항상 조선백자 달항아리로 장식했다. 이 항아리는 소설가인 시가 나오야(志賀直哉)가 2차세계대전 직후 이 절에 와서 잠시 신세를 지고 돌아간 다음 스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보내 준 선물이었다. 그래서 '시가의 항아리'라고 불려 왔다.
스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관음원의 응접실에는 언제나 이 달항아리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러던 1995년 7월 4일 대낮에 한 남자가 침입하여 이 항아리를 들고 도주했다. 이때 경비원들이 뒤쫓아가자 그는 항아리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달아났다. 그 바람에 이 항아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셀 수 있는 파편만 300여 조각이었다. 경찰 조사 후 관음원은 고고학자의 도움을 받아 깨진 파편을 작은 가루까지 쓸어 담아 동양도자미술관에 기증하였다.
미술관 측은 2년간 파편 조각을 맞춰 본 다음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도자기 복원기술자에게 맡겼다. 6개월 뒤 복원기술자는 일차 작업을 마친 것이라며 박물관 관계자들에게 조각조각 이어붙인 항아리를 보여 주었는데 거짓말처럼 완벽한 복원에 모두들 놀랐다고 한다. 손때가 묻었던 자국까지 원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앞으로 미세하게 남아 있는 이음 자국마저 말끔히 없애는 작업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술관 측은 이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기로 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항아리의 역사를 위해서 남겨 두기로 한 것이다. 이후 이 항아리는 미술품 복원의 기적이라는 칭송과 함께 더욱 인구에 회자되는 전설적인 조선백자 달항아리로 되었다. yellowday 옮김
'朝日 국보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56] 연풍현감 이후 단원(檀園) (0) | 2011.04.04 |
---|---|
[55] 三公不換圖 (0) | 2011.04.04 |
[53] 경매 최고가 도자기 (0) | 2011.04.04 |
[52] 대영박물관 달항아리 (0) | 2011.04.04 |
[51] 법정 스님의 철불 사진 (0) | 2011.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