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조선 '씰'의 아버지, 스파이로 몰려

yellowday 2012. 12. 13. 16:37

 

입력 : 2012.12.12 22:46

'페병으로 말미아마서 죽는 사람의 수효는 세일 수 업스리만치 만흐니… 조선의 젊은 장래가 유망한 남녀 청년도 이 병으로써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만은가. 이를 절실이 늣긴 해주 구세료양원장 하락(賀樂) 박사는 금년부터 페결핵을 철저이 퇴치하고자 하야 '크리스마쓰 씰'을 선전판매하게 되엿다….'

조선일보 1932년 12월 11일자는 '삼십여년전 정말(丁抹·덴마크)이라는 나라' '우편국 사무원 인나 호벨(Einar Holboell)'이 결핵 퇴치를 위해

고안한 크리스마스 실이 조선에서도 판매된다고 전했다.

하락은 셔우드 홀(Sherwood Hall)의 우리 이름. 부부 의료 선교사인 윌리엄 제임스 홀(W J Hall)과 로제타 셔우드 홀(R S Hall) 사이에

1893년 11월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캐나다에서 의학 공부를 마치고 1925년 귀국, 대를 이어 의료 선교, 특히 결핵 퇴치에 앞장섰다.

엘리자베스 키스(1936년·왼쪽)와 김기창(1937년)이 도안한 크리스마스 실.
1920년대 들어 폐결핵 '사망자 연복년(年復年) 증가!'(1926년 3월 19일자) '1년간 3천명 사망'에 '매년 3천명씩 늘어'나면서(1927년 4월 20일자),

의학박사 정석태(鄭錫泰)는 '민족 보건의 공포시대'가 도래했다고 외칠 정도로('삼천리' 1929년 9월 1일자) 결핵 환자가 급증했다.

1934년엔 1만7000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해 사망자가 9399명에 이르더니(1935년 3월 29일자), 2년 뒤엔 '건강 왕국의 일대 적국,

결핵 환자 40만' '그중 연년 4만이 타계'한다는(1936년 4월 15일자) '전율할 결핵병 통계'가 이어졌다.

홀 박사는 조선에 처음으로 자신이 일하던 해주 구세병원에 최초의 결핵요양원을 세우고(1928년 10월 31일자), 1931년엔 '결핵박멸운동 후원회'를 조직한 뒤

'결핵 퇴치' 자금을 모으기 위한 '실' 판매에 나선 것. '신경 쇠약과 함께… 도시의 주민 생명선을 맹렬한 형세로 침략하는 문명병'(1933년 11월 8일자)인

결핵의 퇴치를 위해 '외국과 조선 각처에서 씰을 팔어 거치는 돈'을 '조선 각처의 페병을 치료하는 병원에 분배 송금하야 그 돈으로써

돈 업는 사람의 페병을 곳처'주면서(1937년 11월 19일자), 홀 박사는 조선 '결핵 환자의 대부'로 칭송됐다.

크리스마스 실은 1940년 홀 박사가 일제에 의해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강제 추방될 때까지 매년 9차례 발행됐다. 첫 실의 도안은 홀 박사가 서울의 상징인

남대문을 소재로 만들었으며, 조선의 풍경을 소재로 다양한 목판화를 남긴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934·1936년) 김기창 화백(1937~38년) 등도

실 도안에 참여했다(대한결핵협회). 광복 후 1953년 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중단됐던 실 발행도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