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11 23:10
처칠의 카드에는 '섹스'라고 쓰여 있었다. 그가 한참 더듬다 입을 열었다. "섹스는… (잠시 쉬더니) 제게 크나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처칠은 평생 's'자를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했다. 가벼운 말더듬과 혀 짧은 소리로 고생도 심했다. "술 먹고 왔느냐" 같은 야유까지 묵묵히 받아들였다.
'20세기의 웅변가'로 남은 처칠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미국 33대 대통령 트루먼은 정치인의 말에서 '유창함'보다 '간결성'을 으뜸으로 쳤다. 그는 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의 취임사를 첫손에 꼽았다.
포크는 딱 3분 말했다. '텍사스 병합, 세금 감면' 같은 공약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눌변으로 고심했던 링컨도 게티스버그에 섰을 때 2분만 말했다.
그에 앞서 웅변가 에버렛이 두 시간이나 떠들었지만 역사에는 링컨의 말만 남았다. 노르망디 상륙 회의 때 아이젠하워는 정말 한마디만 했다. "승리합시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도 눌변에 가깝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그녀가 중요한 대목에서 말을 더듬으면 자기 가슴을 친다.
그제 밤 TV 토론을 본 커뮤니케이션 학자들도 "말투가 답답했다"고 했다. 문 후보도 품격과 안정감은 있었지만 "ㅅ 발음이 샜다,
전달력이 떨어졌다"는 촌평이 나왔다. 두 후보는 발음과 말 빠르기에서 이정희 후보를 쫓아가지 못했다.

콜의 TV 토크쇼는 지켜봤다. 60~70년대 한·일, 중·일 관계 정상화의 주역을 맡은 일본 총리 오히라도 이름난 눌변이었다.
달변은 자신의 장점뿐 아니라 약점도 함께 드러낸다. 반대로 눌변은 자신을 숨긴다. 눌변에도 유리한 면이 있다.
▶모세는 눌변이고 그의 형 아론은 달변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을 구한 지도자는 모세였다. 남녀 모두 약간 더듬거리는 상대에게 호감을 갖는다는 통계도 있다.
TV 토론도 유권자를 향한 구애(求愛)다. 천천히 더듬듯 말할 때 듣는 사람의 가슴을 스치며 여운을 남긴다. 1분에 원고지 서너 장을 읽어내는 말 속도에
독설까지 뿜는 후보는 유권자 마음 얻기를 포기한 거나 한가지다. 소통의 힘은 말의 속도가 아니라 때로 '멈춤의 지혜'로부터 우러나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