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2.10 22:43
강원도 고성 화진포 해변 남쪽, 솔숲 언덕 오르는 돌계단 축대에 흑백사진이 붙어 있다. 웃통 벗은 아이들이 그 계단에 앉아 찍은 사진이다. 그중 한 아이가 여섯 살 김정일이다. 계단 위 이층 돌집 '화진포의 성(城)'은 1938년 독일 사람 베버가 외국인 휴양촌 예배당으로 지었다. 38선 이북 북한 땅이 되면서 김일성이 가족과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 흔히 김일성 별장이라고 부른다. 옥상에 서면 아름다운 화진포 바다와 호수가 한눈에 든다.
▶호숫가엔 이승만 정권 이인자 이기붕의 별장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지은 방 두 칸 단층집에 부부가 묵어가곤 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가 언덕엔 이승만 별장이 서 있다. 서른 평도 안 되는 89㎡ 단층 슬래브집이다. 이승만은 1910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뒤 선교사를 만나러 화진포에 왔다가 풍광에 반했다. 그는 국군이 6·25 때 화진포를 되찾자 선교사 집이 있던 곳에 별장을 짓고 낚시를 즐겼다. 화진포에 가보면 세 사람 별장이 있는 이유를 알게 된다.

▶진해 해군기지사령부 안 이승만 별장은 일본군 통신대 건물을 고쳐 지은 경남 문화재다.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 거가대교가 지나는 진해 앞바다 거제 저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별장 청해대를 세운 곳이다. 제주도 이승만 별장은 서귀포 해안 절벽 '허니문하우스' 자리에 있었다. 이곳을 사들인 파라다이스호텔이 별장 터에 아담한 기념관을 짓고 이승만의 유품을 모아뒀다.
▶6·25 때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는 고향 플로리다로 돌아가 목장을 꾸렸다. 1956년 한·미재단 고문이던 그가 이승만에게 아시아에서 제일 큰 미국식 목장을 제주도에 만들자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제주도를 찾아 구좌읍 민오름 오르는 길목 초지를 국립 목장 자리로 점찍었다. 이듬해 목장에 공병대가 미군 도움을 받아 귀빈 숙소로 미국식 전원주택을 지었다. 이 귀빈사(貴賓舍)는 이승만이 두 차례 머문 뒤 '이승만 별장'으로 통한다.
▶이승만 별장이 목장째 민간에 팔리고 50년 넘게 폐가로 버려졌다가 제주도가 복원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지 8년 만이다. 복원이 늦어진 것은 제주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 4·3사건 때 대통령이 이승만이라는 탓도 있다. 그러나 차츰 '아픈 역사도 보존해야 할 역사'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한다. '건국 대통령이 세운 근대 건축물'이라는 가치는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는 또 하나 역사 자원을 더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