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50] 백자 철화 포도문 항아리

yellowday 2011. 4. 3. 18:58

대한민국 우표로도 발행된 바 있는 국보 107호 '백자철화포도문항아리'는 사실상 조선 백자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작이다.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빚어낸 이 항아리는 높이 53.8cm의 대작으로 조선백자 중 가장 큰 키에 속한다. 백자대호가 대개 45cm임을 감안하면 그 볼륨감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풍만한 어깨에서 급격히 좁아지며 길게 뻗어 내린 곡선이 아주 유연한데 항아리 전체에는 늠름한 기상이 서려 있다. 엷은 푸른 기를 머금은 우윳빛 백색은 고아한 기품을 자아낸다. 거기에 항아리 전체를 한 폭의 화선지로 삼아 철화(鐵花)로 두 가닥의 포도줄기를 그린 구도의 배치부터가 일품이다. 필치도 능숙하여 굵은 줄기와 어린 넝쿨손의 표현에는 선의 강약이 살아나고, 동그란 포도송이와 넓적한 이파리에는 짙고 옅은 농담이 나타나 있다. 당대 일류 화공의 솜씨가 분명한데 아직은 짐작되는 화가가 없다.

이런 항아리는 흔히 장호(長壺)라고 해서 궁중 연회에서 술항아리로 사용했던 것으로 대개는 청화(靑花)로 그렸다. 그런데 유독 이 항아리는 희귀하게도 철화백자로 빚어졌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영조 26년(1750)조에 "값비싼 페르시아산 청화 안료는 용(龍)항아리 외에는 일절 금하니 철화로 그리라"고 명을 내리는 기사가 나온다. 필시 이런 사정으로 이와 같은 희대의 철화백자 명작이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항아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철도주식회사 전무였던 시미즈 고지(淸水幸次)라는 수장가가 비장(秘藏)하고 일절 세상에 공개한 바가 없던 유물이었다. 그러다 8·15해방 이후 일본인 귀국 때 문화재 반출을 금지시키자 집안일을 돌봐주던 사람에게 맡겨 두고 돌아갔던 것이다. 그 후 고미술상에 흘러나온 것을 당시 수도경찰청장으로 한때는 컬렉터로 유명했던 장택상의 소유로 되었다가 1960년에 김활란 총장이 구입하여 지금은 이화여대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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