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11.26 22:44
벨기에 대학생 롬 하우번은 1983년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23년을 누워 있었다. 그러나 온몸이 마비돼 표현을 못 할 뿐 의식은 멀쩡했다.
그를 '침묵의 감옥'에서 구해낸 건 어머니였다. 아들의 의식이 살아 있다고 믿고 날마다 말을 건넸다. 용한 의사를 찾아 미국도 다섯 번 갔다. 아들은 재활 끝에
발을 움직여 컴퓨터로 의사소통을 하게 됐다. 첫 말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돕지 못해 죄송하다"였다. 9년 전 어머니가 들려준 아버지 별세 소식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우번 같은 '감금증후군'과 달리 식물인간은 깨어나기 어렵다. 대개 5~10년 안에 욕창·폐렴·요로감염으로 죽는다. 식물인간 1100명을 연구한 미국 신경학자
론 크랜퍼드는 15년 넘겨 살 확률이 2만분의 1에서 8만분의 1이라 했다. 가장 오래 생존한 식물인간은 48년을 버틴 미국 간호사다.
크랜퍼드는 15년 임상 조사 결과 "평균치 넘게 사는 경우는 어머니가 보살폈을 때"라고 했다.

▶1970년 열일곱 미국 소녀 에드워다는 당뇨병 약 부작용으로 의식을 잃기 직전 엄마 케이에게 "내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고 했다. 케이는 그때 딸에게
한 약속을 평생 지켰다. 입원비를 정부가 대주는 요양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24시간 딸을 돌봤다. 등에 종기가 나지 않게 두 시간마다 딸의 몸을 뒤집고
네 시간마다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쪽잠을 자며 한 번에 90분 넘게 눈을 붙이지 않았다.
▶딸의 곁을 비운 건 딱 두 차례, 둘째딸 결혼식과 남편 장례식 때였다. 그 사이 어머니의 금발과 딸의 흑발은 함께 백발이 됐다. "딸을 비참한 상태에서 풀어줘라"는
사람들이 집에 총을 쏘는 일도 세 차례 겪었다. 케이는 4년 전 딸의 곁에서 숨졌다. 평생 보살핌이 필요한 중증 장애아의 어머니들은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케이도 평온하게 눈을 감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동생이 보살피던 에드워다도 지난주 42년 병상의 삶을 끝냈다.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던 박완서는 단편 '내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에서 식물인간 아들을 수발하는 어느 어머니를 질투했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 케이는 자식 앞세운 부모들에 비하면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속담에 '긴 병(病)에 효자 없다'고 했지만 반평생을 가는 병에도 어머니는 있었다. '신(神)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냈다'(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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