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기교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나뭇잎 나무에 매달리듯 당나귀
고삐에 매달리듯
매달린 건 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사랑도 꿈도.
그러나 즐거워하라.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유행가라는
사실은 이 시대의
기교가 하느님임을 말하고, 이 시대의
아들딸이 아직도 인간임을 말한다.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기교, 나의 하느님인 기교여.
<1978년>
가벼운 교통사고를 몇 번 겪고 난 뒤 조금만 차가 속도를 내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는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문득 근심에 젖는, 죽고 난 뒤의 팬티가 깨끗할지 아닐지에 대해 걱정하는 인간이 있다. 시인 오규원(1941~2007)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형이다. 인간의 세속적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토록 민활하게 '까발리는' 시가 등장한 것도 오규원에게서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의 오랜 고정관념 속에 고고하게 들어앉아 있는 시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용산에서〉). 다시 말하면, 생은 치장된 겉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낡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있으므로 마냥 근사한 것만이 삶이 아니며 시는 그 삶 전체를 노래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백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삶을 사전에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시도 사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 죄로 나는 사전에 없지만 이 지상에 있는 삶의 下命(하명)대로 살아 있는 동안은 路上(노상)에서 계속 삶을 동냥하겠습니다…" 사전에 없지만 지상에 있는 그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늘상 눈물겨워하거나 억울해하거나 아파하거나 외로워 하는, 모든 마이너리티적 삶의 구색들일지 모르겠다.
위의 고백처럼 사전적 의미의 사랑은 오규원 시인에겐 사랑이 아니다. 우리를 늘 구속하던 개념들, 도덕들을 그는 이렇게 풍자한다. "아 어디로 갔나 여기 있어야 할 사랑 愛. 忠 孝는 지금도 있는데, 아 어디로 갔나. 사랑 愛, 미운 오리새끼.(…)"(〈한 나라 또는 한 여자의 길-楊平洞 3〉)"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가르치는 교육! 정작 '사랑(愛)'은 있지도 않은 우리의 지배관념! 늘 '미운오리새끼'의 운명인 '사랑'이므로 이제 사랑은 '기교'를 낳을 수밖에 없다. '기교'가 속임수적 요소를 가진다는 부정적 의미에서 탈출하여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는 방법적 관념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멍청한 명사'가 '멍청한 후렴'인 시대, 그것에 매달려 보았지만 '사랑도 꿈도' 비참했던 시대.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은 한 시대, 아니 모든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기교이며 신의 기교라는 자각은 사랑의 사회적 차원을 가장 아름답고 풍자적으로 제시해 준다.
"가을은 가을 텃밭에 묻어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 가는 일이다'(〈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라고 한 그는 한 줌 재가 되어 강화도 전등사 뒷산의 나무 아래 잠들었다. 〈서울역 그 식당〉에도 드나들던 가난한 제자 시인 함민복은 오래 강화도에 살면서 선생님의 '능참봉'을 자처하며 허허롭게 웃는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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