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들로 단천에 나니
재간이 뛰어났다
자라나 영생에 배우고
뒤에 영신에 가르칠새
맑고 고요한 마음이
하늘과 사람을 기쁘게 하였다
뜻을 두고 스물세 살로
동해에 가니
우리들의 정은 울다
yellowday 옮김
칠월백중-백석
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 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씨들이
생모시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치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나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옷을 있는 대로 다 내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뚜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백이신을 맨발에 바꿔 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 길에는
건들건들 씨언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랜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재일치듯 하였는데
봉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 하고
그러다는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봉갓집에 가는 것이다
봉가집을 가면서도 칠월(七月)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백중 : 음력(陰曆)으로 칠월 보름날. 여름 동안 안거(安居)를 마치고 제각기 허물을 대중 앞에서 드러내어 참회(懺悔)를 구하는 날로 불교에서 유래한 명일(名日). 나중에는 전통 민속의 날로 발전하여 이날에는 농사꾼들이 일을 하지 않고 쉬며 운동이나 그밖의 오락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로 인식되어졌다.
세불 : 일정한 기간을 두고 세 번.
개장취념 : 각자가 돈을 내어 개장국을 끓여 먹는 것.
쇠주푀적삼 : 중국 소주(蘇州)에서 생산된 고급 명주실로 짠 적삼.
항라적삼 : 명주, 모시, 무명실 등으로 짠 저고리의 하나로 천에 구멍이 송송 뚫어져 있어 여름옷으로 적당함.
자지고름 : 자줏빛의 옷고름. 옷고름은 저고리나 두루마기의 앞에 달아 옷자락을 여며매는 끈.
기드렁한 : 길쭉하여 길게 늘어뜨린 모양을 한.
한끝나게 : 한껏 할 수 있는 데까지.
상나들이옷 : 가장 좋은 나들이옷.
꼬둘채댕기 : 가늘고 길게 만든 빳빳하게 꼬드러진 감촉의 댕기.
네달백이 : 세로줄로 네 가닥 날로 짠 짚신.
따배기 : 고운 짚신. 곱게 삼은 짚신.
남갑사 : 남색의 품질좋은 사( 紗 : 엷고 가는 견직물 )
광지보 : 광주리 보자기.
백재일 치듯 : 백차일(白遮日) 치듯. 흰옷 입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
문주 : 빈대떡 또는 부침개.
호주를 하니 : 물기에 촉촉히 젖어 몸이 후줄근하게 되어.
봉가집 : 본가집. 종가집.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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