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美術산책

[81] "잠시 후 앵무새는 살아난다… 기적은 神 아닌 과학의 것"

yellowday 2012. 10. 17. 22:30

입력 : 2012.10.16 22:50

영국의 화가 조지프 라이트(Joseph Wright of Derby·1734~1797)는 흔히 출생 지명을 따서 '더비의 라이트'라고 불린다. 더비는 18세기 중반부터 기술 혁신을 통해 첨단 기계를 생산하여 전통적인 농경 사회였던 영국을 공업 국가로 변모시킨 산업혁명의 중심 도시였다. 더비에서 활동하며 첨단 산업의 성과에 매료된 라이트는 정밀한 기계, 과학적 실험 등 그전까지 미술에서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공기 펌프 실험'이다.

조지프 라이트 '공기펌프 실험'… 1768년, 캔버스에 유채, 183×244㎝, 영국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커다란 유리통이 달린 기구와 그 안에서 숨을 할딱대며 서서히 죽어가는 가련한 앵무새를 주목하고 있다. 붉은 가운을 입은 백발 과학자가 오른손에 펌프를 쥐고 유리통 속의 공기를 서서히 빼버린 나머지 지금 앵무새는 거의 진공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 놀랍고도 잔인한 광경 앞에서, 두 소녀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아빠 품에 안겨 있고, 의자에 앉은 중년 남자는 사색에 빠졌으며, 왼쪽의 두 청년은 흥분 상태로 관전 중이다. 그 뒤에 선 젊은 남녀는 실험은 뒷전이고 서로 은근한 눈빛을 나누기에 바쁘다. 그야말로 숨이 막힐 듯한 절정의 순간에 과학자가 왼손을 돌려 뚜껑을 열기만 하면, 앵무새는 기적처럼 다시 살아나고, 관중은 경탄과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생생한 이 장면에 더욱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극적인 명암 대비다. 테이블 가운데 놓은 조명은 마치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어두운 배경 속에서 등장인물의 서로 다른 표정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 그림 속의 빛은 신성(神性)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라이트는 어둠을 밝히는 진리가 더 이상 신(神)이 아니라 과학에서 유래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