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카프카의 친구

yellowday 2012. 10. 17. 20:16

 

입력 : 2012.10.16 22:44

프란츠 카프카는 1901년 체코 카를대학에 들어가 동급생 막스 브로트를 만났다. 둘 다 유대인이었지만 독일어로 문학을 하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브로트는 카프카와의 첫 만남을 평생 잊지 못했다. "진기하고 과장된 문학에 열광한 나와 달리 소박한 문학을 좋아한 카프카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 브로트는 7년 뒤 첫 소설을 내 호평을 받으며 문단의 샛별로 떠올랐다. 그 무렵 카프카는 보험회사에서 일하며 여전히 습작 중이었다.

브로트는 카프카에게 창작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다.

 

▶1913년 카프카는 단편 '선고'를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소설 '변신'을 비롯해 다섯 권의 책을 냈지만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래도 꾸준히 소설을 쓰다 폐결핵에 걸리고 말았다. 병세가 악화되자 1921년 '내 유고(遺稿)는 모두 불태워 주게'라는

유언장을 브로트에게 미리 써놓고 3년 뒤 눈을 감았다. 브로트는 카프카가 남긴 원고가 너무 아까워 유언을 저버렸다.

그는 소설 '심판' '성(城)' '아메리카'를 잇따라 출판해 '카프카 바람'을 일으켰다.

▶브로트는 유언을 어긴 것에 대해 "카프카가 죽기 전에 만나 유고를 불태우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카프카가 자기 원고가 진짜로 불태워지길 바랐다면 브로트 대신 다른 유언장 집행인을 세웠을 것이란 얘기였다.

1939년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자 브로트는 텔아비브로 피신하면서 카프카의 원고도 들고 갔다. 브로트는 작가로 활동하다

1968년 세상을 뜰 때 여비서에게 카프카의 원고를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기증하라고 했다.

 

▶여비서는 유언을 따르지 않은 채 20년 뒤 '심판' 육필 원고를 200만달러에 팔았다. 2007년 여비서가 세상을 뜨자 이스라엘 도서관이

여비서 유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엊그제 이스라엘 법원은 "브로트 유언대로 카프카의 나머지 육필 원고를 도서관에 넘기라"고 판결했다.

원고 중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일기와 편지도 있다고 한다.

 

▶흔히 작가는 동료의 글을 읽을 때 싱숭생숭해진다고 한다. 자기보다 못 썼으면 우쭐해져 글쓰기를 게을리하고,

더 잘 썼으면 질투에 눈이 멀어 글에 힘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브로트는 카프카보다 일찍 유명해지고도 늘 친구를 격려했다.

카프카의 성실한 첫 독자이자 카프카를 불멸의 작가로 만든 편집자이기도 했다. 카프카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다룬 작가였지만

브로트가 있었기에 그의 삶과 죽음은 쓸쓸하지 않았다. 20세기 독자들이 카프카가 남긴 '심판' '아메리카' 등을 통해

시대와 자신을 비춰볼 수 있었던 것은 우정 덕분이다.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악한 참배'  (0) 2012.10.22
스포츠와 정치  (0) 2012.10.18
'부자 아빠'의 파산  (0) 2012.10.16
줄기세포 오보(誤報)의 법칙  (0) 2012.10.15
노벨문학상과 정치  (0) 2012.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