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북한 문학 66년

yellowday 2012. 9. 17. 09:44

 

입력 : 2012.09.16 22:29

1999년 탈북한 최진이 시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 문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불만을 터뜨리곤 한다. 그런 자리에서 김일성 부자 찬양시를 너무 많이 쓴 어느 작가가 동료 문인들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너는 짬만 나면 김일성 부자 욕을 하면서 찬양시는 어떻게 그리 많이 쓰느냐"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 작가는 "나는 김일성 부자가 아니라 내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고 웃겼다고 한다. 김정일도 작가동맹의 찬양시를 보곤 "닭살이 돋는다"며 퇴짜놓은 적이 있다.

▶김일성 우상화 문학의 시조 격은 함흥 출신 소설가 한설야다. 그는 1946년 북한에서 단편 '혈로(血路)'를 냈다. '김일성 장군'이 낚시질로 터득한 유격 전술로 소부대를 이끌면서 조선 천지에 광명을 비춘다는 내용이다. 임화를 비롯한 다른 월북 문인들은 김일성 우상화 같은 것을 생각도 않을 때였다. 임화는 1953년 미제 간첩으로 몰려 숙청됐다. 한설야는 그 후 김일성 우상화 소설을 계속 써 교육문화상(相)까지 올랐지만 그 역시 1962년 숙청됐다. '나 자신의 문학을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동료에게 쓴 편지가 고발당했다.

▶김일성 우상화 문학은 1960년대 후반 본격화됐다.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 4년차였던 김정일이 '주체문학론'을 내세워 김일성 우상화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1967년 숙청된 함경도 갑산군 출신 권력층 '갑산파'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당 간부들에게 읽히고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밀려났다. 노동당은 '김일성 혁명 사상만이 확고부동한 신념'이라고 선언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뒤엔 김정일이 '수령영생문학'이란 걸 하라고 지시하면서 김일성 추모시가 많이 나왔다. 김정일의 선군 정치를 찬양하는 '선군혁명문학'도 나왔다. 2004년 북한 최고 시인 오영재는 '선군의 총소리'란 시를 발표했다. 기관단총을 쏘는 김정일을 노래하며 '오직 총대만이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음을/ 온 세상에 선언하시는/ 철의 결심의 폭발이었다'고 읊조렸다.

▶지난 14일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대회 총회에서 '망명 북한 작가 펜센터' 가입이 참가국 86개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북한은 펜 회원국이 아닌데 탈북 문인 20여명이 먼저 가입했다. 탈북 문인들은 "쓰고 싶은 글을 못 쓰는 북한 문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부러워하겠느냐"고 했다. 앞으로 탈북 문인들은 국제펜본부에 북한 문학과 인권 실태를 정식 보고하게 된다. 탈북 문인들이 겪은 '주체문학' 보고서도 냈으면 좋겠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희극적이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대하소설 한 세트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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