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13 23:00
- '계월향 초상' - 작자 미상, 비단에 채색, 105×70㎝, 1815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 초상화는 계월향 사후 200년이 넘은 1815년에 그려졌다. 그녀를 기리는 평양의 사당에 걸려있던 작품이다. 물론 생전 모습은 아닐 테다. 형식은 미인도를 닮았다. 세운 무릎에 팔꿈치를 괸 자태가 성숙한데 조붓한 얼굴선에서 애티가 난다. 부드럽게 내려오다 인중을 만난 콧날은 시원스럽고, 애써 오므린 입술은 다소곳한 기색을 더한다. 머리 꾸미개는 올올이 묘사하는 대신 덩이지게 그려놓았다. 쪽 찐 머리가 아닌데 비녀를 꽂은 게 낯설다. 초록빛 선명한 삼회장(三回裝) 저고리는 어깨와 팔에 꼭 끼어 터질 듯하다.
뒷날 계월향은 온갖 팩션(faction)의 주인공이 됐다. 이 초상에도 그녀가 죽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기술돼 있다. '김경서가 왜장의 머리를 들고 문을 나오니 계월향이 옷을 잡고 따랐다. 둘 다 빠져나오기는 어렵게 되자 김경서는 칼을 들어 그녀를 쳤다'. 계월향은 왼손에 수건을 부여잡고 있다. 저 손으로 김경서의 옷자락을 잡았을 것이다. 눈썹 위에 눈썹 하나씩을 더 그렸다. 그렇게 한 화가의 속내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가슴에 매단 노리개에 '재계(齋戒)' 두 글자가 또렷하다.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재계다. 그날 계월향은 죽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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