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5.06 22:41
배운 자 나약함 다그치는 안경 속 그 눈길
1909년, 전라도 구례에 칩거하던 매천(梅泉) 황현(黃玹)이 상경했다. 숨통이 할딱거리는 조선의 사직을 그는 확인했다.
그는 사진관을 찾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독사진을 찍었다. 챙 좁은 갓과 주름진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그 사진이 징조였을까.
두루마기는 빛나도 갓 너머는 낙조가 드리운 듯 얼룩졌다. 그의 얼굴도 암전(暗轉)되고 있다. 1910년, 나라가 망했다.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천년을 돌이키던 황현은 글을 배운 자의 노릇에 통탄하며 자결했다.
1911년,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골몰했다.
1911년, 고종의 어진(御眞)을 그렸던 화가 채용신은 우국지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 골몰했다.
망국(亡國)의 신록이 구슬프던 5월, 그는 황현의 초상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황현의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사진 귀퉁이에 황현이 적어놓은 글귀가 또렷했다. '묻노니 그대 한평생, 가슴속에 무슨 불평이 그리도 쌓였는가'.
- '황현 초상' - 채용신, 비단에 채색, 120.7×72.8㎝, 1911년, 개인 소장.
바꿔 그렸다. 초시(初試)에 장원급제하고도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은 황현의 유학자적 면모가 고친 차림새에서 도드라졌다.
안경 속에서 눈은 뚫어 보지 않고 째려본다. 홍채 속의 반점까지 그렸다. 오른쪽 눈이 사시(斜視)라서 눈길이 낯선데,
안경 속에서 눈은 뚫어 보지 않고 째려본다. 홍채 속의 반점까지 그렸다. 오른쪽 눈이 사시(斜視)라서 눈길이 낯선데,
그 낯섦이 모델을 외려 주목하게 한다. 국록(國祿)을 받은 적 없고 초야의 처사나 다를 바 없으니,
앞에 나서 목숨을 끊을 의무가 없었던 황현이었다. 하지만 그의 유서는 결기가 서있다. '오백년이나 선비를 길러온 나라에서,
국난을 당해 죽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 원통치 않은가?' 성글고 버석거리는 수염에서 강퍅함이, 긴 콧날과 지그시 다문 입술에서
단호함이 엿보인다. 선비의 나약함을 다그치는 저 눈길, 그의 사시는 차라리 여기저기 다 보는 겹눈이다. 옛그림 옛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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