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그 미소를 보기 위해… 남자는 새벽 이슬을 밟았다

yellowday 2012. 8. 11. 17:19

'잠시 안화(眼花)가 어지럽게 눈앞을 수놓는가 싶더니 능선 너머로 해가 솟구쳐 올랐다. 마애불이 새겨진 칠송대 큰 바위의 

맨 꼭대기에 있는도솔암 내 원궁부터 비추기 시작하던 동살은 눈 깜짝할 새에 바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마애불은순식간에 들이닥친 동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221쪽, 고창 동불암터)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등 작품을 통해 전국 폐사지의 아름다움을 전해온 작가 이지누가 이번엔 전북 지역 절터 8곳을 

찾았다. 남원 만복사터·개령암터·호성암터, 완주 경복사터·보광사터, 고창 동불암터, 부안 불사의방터·원효굴터 등이다.


전북 고창 선운사 뒤편 선운산 길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동불암터 마애여래좌상. 투박하면서 친근한 얼굴의 이 마애불은 보물 1200호로 지정됐다. /알마 제공
전북 지역은 우리 불교에서는 특별한 미륵의 고장. 백제 유민들의 한을 달래던 시절부터 곳곳에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자리했다. 절이 흔적을 감추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폐사지란 기왓장 몇 개, 잡초가 대부분이지만 전북 지역엔 마애불이 
남은 곳이 많다.

 

저자가 마애불을 찾는 시간은 주로 새벽 동틀 무렵. 우툴두툴한 바위에 야트막하게 부조(浮彫)된 마애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려면 아침 첫 햇살, 즉 동살이 비스듬히 비칠 때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숱하게 바위 위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안개 흠뻑 젖으며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차 한 잔 올린 후 온전한 새벽 첫 햇살을 기다린다. 7~8m나 되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절벽 사이 2~3평 남짓한 평평한 바닥이 나오는 불사의방터, 겨우 어른 한 사람 지나갈 만한 절벽 모퉁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원효굴터 등 답사 장면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저자의 노고와 생생한 사진 덕택에 독자들은 폐사지의 

푸른 새벽 풍경을 오감으로 만끽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미륵불을 세우고 깎으며 나은 미래를 그렸던 옛 민초들의 꿈도

만날 수 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