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안화(眼花)가 어지럽게 눈앞을 수놓는가 싶더니 능선 너머로 해가 솟구쳐 올랐다. 마애불이 새겨진 칠송대 큰 바위의
맨 꼭대기에 있는도솔암 내 원궁부터 비추기 시작하던 동살은 눈 깜짝할 새에 바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마애불은순식간에 들이닥친 동살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놓았다.'(221쪽, 고창 동불암터)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등 작품을 통해 전국 폐사지의 아름다움을 전해온 작가 이지누가 이번엔 전북 지역 절터 8곳을
찾았다. 남원 만복사터·개령암터·호성암터, 완주 경복사터·보광사터, 고창 동불암터, 부안 불사의방터·원효굴터 등이다.
- 전북 고창 선운사 뒤편 선운산 길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동불암터 마애여래좌상. 투박하면서 친근한 얼굴의 이 마애불은 보물 1200호로 지정됐다. /알마 제공
자리했다. 절이 흔적을 감추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 폐사지란 기왓장 몇 개, 잡초가 대부분이지만 전북 지역엔 마애불이
남은 곳이 많다.
저자가 마애불을 찾는 시간은 주로 새벽 동틀 무렵. 우툴두툴한 바위에 야트막하게 부조(浮彫)된 마애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보려면 아침 첫 햇살, 즉 동살이 비스듬히 비칠 때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숱하게 바위 위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안개 흠뻑 젖으며 새벽 예불 시간에 맞춰 차 한 잔 올린 후 온전한 새벽 첫 햇살을 기다린다. 7~8m나 되는 밧줄을
타고 내려가면 절벽 사이 2~3평 남짓한 평평한 바닥이 나오는 불사의방터, 겨우 어른 한 사람 지나갈 만한 절벽 모퉁이를
돌아야 만날 수 있는 원효굴터 등 답사 장면은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저자의 노고와 생생한 사진 덕택에 독자들은 폐사지의
푸른 새벽 풍경을 오감으로 만끽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미륵불을 세우고 깎으며 나은 미래를 그렸던 옛 민초들의 꿈도
만날 수 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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